11살. 아직은 무엇을 하던 어린 나이였다. 상대방을 좋아하는 감정을 진실로 깨닫기에는 더욱이, 그리고 알아챈다고 해도 그걸 진지하게 생각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나이.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예쁘고 순수할 나이였을 것이다. 야마토에게도 그랬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뛰는 그 감정을 어찌해야할지 몰라 버둥거렸다. 상대방은 그것을 알고나 있을까. 뾰로통한 표정을 하고서 야마토는 강 한가운데를 노려보았다. 입맞춤에 대한 의미. 그걸 듣고서 먼저 설레는 말을 꺼냈던 것은 타이치였다.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하지 못 했던 것은 바보 같은 자신이었음을 알면서도 야마토는 골이 나있었다. 그래서 최근 들어 나와 줄 생각을 하지 않는 아리아에게 투정을 부려보았다. 비록 마음속에서일 뿐이었지만. 야마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물속에 빠져든 꿈을 꾼 날로부터 벌써 5일이나 지나 있었다. 거의 날마다 자신을 보러 달려오던 타이치가 나오지 않는 이유가 죠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심심함을 달래려 물수제비를 던져보기도 하고 꽤 멀리까지 나가 열매를 따오기도 해보았다. 하지만 타이치는 나왔다 들어간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하고서 야마토는 아침에 꺾어 온 꽃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가 보고 싶었다. 겨우 5일이었지만 사무치게 그리웠다.
“또 아픈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물과 떨어지지 않는 한 아플 일은 없는 존재들이었기에 그 이유는 아닐 것이었다. 그럼 뭘까. 야마토는 중천에 떠 있는 햇볕을 쐬다가 이내 동굴로 등을 돌렸다. 오늘도 나와 줄 것 같은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동굴로 돌아가는 도중 손에 쥐고 있던 꽃을 예쁘게 모아들었다. 타이치에게 미처 가르쳐 주지 못 했던 화관 만들기를 얼른 알려주고 싶었다. 엉성하게 만들 그의 모습을 상상하며 야마토는 몰래 웃음 지었다. 그런 야마토의 손에 풀물이 들어있었다. 향기까지 달큰하게 배어들었다.
타이치는 자신의 여동생을 안은 채 숨어있었다. 공포에 물든 갈색 눈이 처량했다. 익숙해질 리 없는 비명소리들. 찢어질 것 같이 울리는 강의 울음소리. 제 여동생이 기어코 울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괜찮아. 하고서 달래는 자신의 마음도 진정이 되질 않았다. 사냥꾼들이 사용하는 그물은 언제 봐도 무서웠다. 아무리 잡아 뜯어도 풀어지지 않았다. 타이치는 자신보다 큰 아리아들이 그물에 마구 엉킨 채 물 밖으로 끌려 나가는 것을 보고 말았다. 그들은 끌려가면서도 어린 아리아들에게 소리쳤다. 도망치라고. 어서 숨으라고. 물속에서는 그 어떤 존재보다도 자유롭던 그들이 숨어야만 했다. 강이 요동쳤다. 자신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거세게 물살을 토해냈다. 하지만 인간들은 생각보다 더 지독했다.
“타이치, 히카리 잘 챙겨야 돼. 알겠어?”
죠의 다급한 목소리가 물살을 타고 흘렀다. 울먹이는 동생을 안아들고 타이치는 어디로든 숨어댔고 그 짓을 3일내내 해야 했다. 아리아들이 있다는 것을 안 사람들은 미친 듯이 그물을 던져댔다. 무엇이 그렇게 신나는 건지 그들은 마구 웃어재끼며 자신들을 옭아맸다. 그 웃음소리가 싫었다. 혐오감에 몸이 떨려왔다. 히카리가 제 옷깃을 꽉 잡는 것이 느껴졌다. 타이치는 온 힘을 다 해 그녀를 진정시켰다.
“오빠, 어떡해. 어떡해 우리.”
“……오빠도 잘 모르겠어. 모르겠지만 괜찮아. 넌 안전할 거야.”
히카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타이치는 눈을 꽉 감았다. 이 눈을 뜨고 나면 모든 게 다 사라져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명소리도, 강의 울부짖음도,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그리고 저 그물들도. 그러다가 타이치는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한 사람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야마토, 하고 작게 그 이름을 불렀다. 그도 저들과 같은 사람이었다. 그 사실에 숨이 막혔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너는 저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 알지만 무서워. 타이치는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자신들을 숨겨주려 가슴을 여는 강의 품으로 한껏 파고들었다. 여전히 떨고 있던 히카리의 울먹이는 소리가 슬프게 퍼졌다. 타이치는 그런 동생의 등을 다독이며 대신 슬픔을 삼켜내야 했다.
겨우 살아남은 아리아들은 소란이 지나가고 나서도 이틀간은 주변을 잔뜩 경계한 채 근신 중이었다. 주변에서는 당장 자리를 옮겨야 한다는 소리로 성화였고 아직 어린 아이들은 여전히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 사이로 죠는 두리번거리며 타이치와 히카리의 모습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바위 위로 나란히 앉아있던 남매를 발견하고는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히카리는 아직도 타이치의 품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있었다. 귀찮은 내색 없이 여동생을 꼭 끌어안고 있던 타이치는 죠의 부름에 위를 쳐다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타이치의 눈빛이 가라앉아있는 것을 본 죠는 나오려는 한숨을 속으로 집어넣어야 했다. 늘 밝게 빛나던 갈빛 눈동자가 침울해진 모습을 보는 것은 죠에게도 고통이었다. 슬며시 남매에게로 내려온 그는 물결에 같이 춤을 추고 있는 히카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히카리는 울상이었다. 좀처럼 진정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타이치.”
“응.”
“잘 했어. 히카리까지 데리고 숨느라 힘들었지.”
“……아니.”
축 쳐진 목소리가 죠의 가슴을 여몄다. 사실 타이치가 사람들의 횡포를 제대로 목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같이 놀고 있던 누이가 순식간에 끌려 올라가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말았으니 충격이 상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부리는 고집만큼이나 겁도 없는 아이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한 짓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렸다. 죠는 히카리를 안고 놓을 줄 모르는 타이치의 억지로 떼어내 잡았다. 그 작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타이치 이제 히카리는 내가 볼게.”
“싫어.”
“……타이치, 이제 괜찮아.”
“싫어.”
타이치는 붙잡힌 손을 빼낸 뒤 다시 히카리를 끌어안았다. 히카리도 타이치의 팔을 붙잡고서 놓지 않았다. 죠는 안타까움에 볼 안쪽을 깨물었다. 몇 번을 더 설득해 봐도 소용이 없는 탓에 결국 타이치를 떼어 놓는 것은 포기하고 남매의 옆에 앉았다. 말없이 타이치의 어깨를 토닥였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죠는 손끝에 느껴지는 떨림에 놀라 타이치를 내려다보았다. 아이의 눈 밑이 붉었다. 떨리는 것은 자신의 손이 아닌 타이치의 어깨였음을 눈치 챘다. 죠는 타이치의 작은 몸을 감싸 안았다.
타이치는 잠이 들어버린 히카리를 죠에게 빼앗겨야 했다. 억지로라도 기분을 풀고 오라는 죠의 말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라 서성이기만 하던 타이치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하듯 뭍으로 올라갔다. 익숙한 물길. 이제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방향에는 아마도 노란 머리카락을 반짝이는 아이가 있을 것이었다. 외로움에 지쳐있던 아이. 사람 아이. 타이치는 잘 나아가다가 곧 멈춰 섰다. 무서웠다. 야마토의 눈을 바라보기가 무서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얼른 보고 싶어 하던 그 파란 눈동자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햇볕이 강 아래로 들어왔다. 물결에 쓸려 흔들리는 물풀들과 꽃들이 타이치의 발목을 잡는 것 같았다. 그는 주먹을 꼭 쥐었다. 속으로는 분명 아니라고 생각했다. 야마토는 그런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하지만 떨리는 손을, 다리를.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치여 타이치는 몸을 웅크렸다. 강이 그런 타이치를 감싸 안았다. 물결이 그의 주위를 감싸 돌고 있었다. 괜찮다. 하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다시 몸을 움직였다. 뭍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 가로 나와 앉아있는 아이가 보였다. 손에는 예쁜 화관을 들고 강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그 모든 것을 눈동자에 담은 채 앞으로 다가갔다. 아이의 손이 타이치의 팔을 붙잡았다.
타이치는 그 온기에 몸을 떨었다.
야마토는 굳어있는 타이치를 보고 당황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 했다. 근 일주일 만에 보는 타이치의 표정에는 즐거움도, 반가움도 없었다. 역시 어딘가 아픈 거였나 하고서 야마토는 그를 걱정했지만 타이치는 야마토의 걱정 어린 시선에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야마토는 붙잡은 팔을 조금 흔들어 보았다. 그제야 타이치가 흠칫거리며 야마토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야마토는 표정을 찡그렸다. 고개를 든 타이치가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였다. 꽃을 보러 갔을 때, 그 때만치 잔뜩 겁먹은 얼굴을 하고서 자신을 마주하고 있는 타이치를 보며 야마토는 입 안이 마르는 것을 느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고 그저 자신을 빤히 바라보기만 하는 그가 답답했다.
“타이치, 왜 그래. 왜 그러는데. 무슨 일 있었어?”
그 물음에 타이치의 눈이 커졌다. 한없이 다정하고 따뜻한 목소리였다. 진심으로 걱정이 묻어나는 질문에 타이치는 콧등을 한 번 찡그렸다. 눈가가 간지러운 것을 보니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너는 이다지도 상냥한데. 타이치는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야마토의 손을 잡았다. 갑작스런 손길에 놀랐는지 야마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타이치를 빤히 쳐다보았다.
“넌 안 그럴 거지.”
“뭐?”
“야마토, 너는 계속 믿을 수 있는 거지, 무섭게 하지 않을 거지?”
“타이치?”
“널 미워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대답해 얼른. 내가, 나는…….”
기어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가슴이 죄어왔다. 목까지 차오른 감정을 어찌 하지 못 하고 울어버리는 타이치를 앞에 두고 야마토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렸다. 타이치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에 대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야마토를 그를 달래기 위해 이런 저런 말을 걸며 타이치를 진정시켰다. 다행이 금방 안정을 찾은 건지 울음소리는 잦아들었다. 안심하며 야마토는 조금 전 타이치가 한 말을 다시 천천히 되뇌었다. 무슨 소리였던 걸까.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아 야마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나한테 울지 말래놓고 네가 울면 어떡해.”
“…….”
“오랜만에 얼굴 보여주면서 이게 뭔데.”
“……야마토.”
타이치는 야마토의 이름을 부르며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그 미소가 너무 옅어서 야마토는 제 앞에 있는 소년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았다. 순간 너무 불안해서. 야마토는 저도 모르게 타이치의 두 손을 꽉 잡았다. 붙잡힌 자신의 손을 바라보던 타이치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가족을 잡아갔어. 바로 내 앞에 있었는데. 잡혀갔어.”
“뭐…….”
“비명소리가 아직도 들려와. 귀가 울려.”
“…….”
“야마토 어쩌지. 어떡하지 나는. 네가 정말 좋은데 사람들은 너무 무서워. 어쩌지.”
다시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대신 웃고 있었다. 그 미소가 방금 전에 흘린 눈물보다 더 아파보였다. 어쩌지. 라는 말만 반복하는 타이치의 손이 떨렸다. 처음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만난 이래로 처음이었다. 물에서 떨어져 불안해했을 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를 악 무는 것이 보였다. 이 상태로 어떻게 뭍으로 나온 건지, 야마토는 이제까지 토라져 있던 자신을 탓하며 타이치를 끌어 안아주어야 했다. 뭐라 말을 해주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가족을 눈앞에서 잃는 충격과 고통은 야마토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어서였다. 그것은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타이치가 야마토의 등을 마주 안았다.
“나는 절대 그러지 않을게. 무섭게 만들지도 않을 거고, 도망치게도 하지 않을게.”
“…….”
“못 믿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진짜야. 정말로.”
살며시 타이치를 품에서 떼어내고서 눈을 맞췄다. 파란 눈은 늘 그랬던 것처럼 맑았다. 하늘을 비추는 물처럼 맑았다. 타이치는 그제야 원래대로 웃었다. 그는 아까부터 야마토의 옆에 놓여있는 화관을 내려다보았다. 나도 가르쳐줘, 만드는 법. 타이치의 말에 야마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타이치를 따라 웃으며 떨어진 화관을 주우려 했을 때였다. 타이치가 자세를 낮추려는 야마토의 팔을 붙잡고는 무턱대고 물속으로 잡아끌었다. 당황한 야마토가 뭐라 해보기도 전에 두 사람은 강물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익숙한 입맞춤이 오고간 다음에도 야마토는 여전히 놀란 얼굴이었다. 타이치는 잡고 있던 그의 팔을 놓아주었다. 그렇게 얼마동안을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을까. 먼저 다가간 것은 야마토였다. 그는 무언가를 잠시 망설이다 주저하던 손을 내밀어 타이치의 뺨을 살며시 감쌌다. 타이치는 야마토가 다음으로 할 행동을 가만히 기다렸다. 쭈뼛거리던 야마토가 달싹이던 입을 열었다.
“……역시 아직은 못 해.”
“뭐를?”
“사람들이 갖는 의미.”
“…….”
그 말에 타이치가 먼저 입술을 포갰다. 야마토의 눈이 꼭 감겼다. 물속인데도 그 얼굴이 붉게 물든 것이 보였다. 타이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숨을 나눈 게 아냐. 맞댄 거지. 그 말에 야마토가 조심스레 눈을 떴다. 그리고는 타이치의 말에 대답하듯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아직도 부끄러운지 한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그 얼굴에서는 조금 분한 표정도 보였다. 그게 또 우스워 타이치가 웃음을 터뜨리자 야마토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타이치, 다음에는.”
“…….”
“다음에는.”
“……응.”
그 때에는 네게 먼저 입맞춤을 해도 될까, 내가.
전하고 싶은 의미를 전부 담아서.
말을 전부 잇지 못 했지만 타이치는 이미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자 야마토는 타이치의 몸을 한껏 껴안았다. 아직은 용기도 없고 숫기도 없는 자신을 그가 기다려 주길 바라면서. 그러자 타이치도 야마토를 마주 안아주었다. 그렇게 서로의 가슴이 맞닿았다. 심장이 세게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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