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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Aria

[야마타이]Aria 09






아이는 언제 이렇게 자랐나 싶을 정도로 빨리 커. 웃으며 자신과 제 동생의 키를 재주던 어머니의 미소가 보였다. 손을 뻗었던가. 아들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주던 어미의 입은 부드럽게 호를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곧 그 사이로 울컥거리며 터져나오는 붉은 액체는 아, 이것이 꿈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꿈인 것을 알면서도 결국 도망치지 못 하는 것은 스스로가 나약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며 소년은 잠에서 깨어났다. 옷에 축축하게 벤 식은땀이 악몽을 헤매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많이 길어버린 금발은 어슴푸레한 새벽의 빛을 맞아 푸르게 빛이 났다. 야마토는 꿈 속의 어미에게 뻗었던 자신의 손을 이리저리 바라보아야 했다.

 

“언제 이렇게 자랐나 싶을 정도로…….”

 

꿈에서 보았던 자신의 손은 아주 작았다. 하지만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자신의 손은 많이 자라버린 사내의 손이었다. 손마디가 굵었고 손가락은 길었다.

 

“빨리…….”

 

그는 괜히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댔다. 두피까지 맺혀있는 땀방울이 손끝을 적시자 기분이 나빠졌는지 문 밖을 나섰다. 서리가 내려앉는 새벽, 달도 잠든 듯 캄캄한 하늘 아래 홀로 선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똑같이 깊게 내뱉었다. 공기가 차가워서인지 목구멍이 시렸다. 땀이 식으면서 몸이 으슬으슬했지만 그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초라한 집의 담벼락에 등을 대고 서서 새까만 어둠 사이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은 곧 동이 틀 것이란 것을 알았다. 해가 뜨기 전의 밤하늘이 가장 어둡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잠들지 않고 태양을 기다리기로 했다.

 

악몽에 시달리고 그 때문에 얼른 날이 밝기를 바라며 불안감에 떠는 남자아이는 이미 많이 커버린 17살의 소년이었다. 6년이 지나서도 고독에 적응하지 못 하고 무서운 꿈을 꾸는 아이는 몸만 훌쩍 자라있었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는 소년의 이름은

이시다 야마토였다.

 

 

 

 

 





 

 

 

탁-탁- 나무를 베는 소리가 들렸다. 옆으로 꽤 쌓인 나무들을 바라보던 야마토는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쉬지 않고 손을 놀렸다. 날이 무뎌진 도끼는 그래도 아직 쓸 만했다. 베고 있던 나무가 쩍 소리를 내며 부러지자 야마토는 다 끝났다는 듯이 한숨을 세게 몰아냈다. 지게에 부지런지 쌓아올리고 미리 싸놓았던 과일들도 한주머니 가득 짊어진 야마토는 작지만 나름 괜찮아 보이는 집으로 들어섰다. 얼마 전부터 지내고 있는 자신의 거처였다. 버려진 집인 것 같아 냉큼 들어와 살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로는 들어가 살지 못 했다. 반역자의 아들이니 항상 숨어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늘 그의 어깨를 억눌렀다. 하지만 혹시나 자신을 알아보는 자가 있을까 늘 노심초사하며 사는 것 보다야 이렇게 숨어 지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며 지내는 중이었다. 다만 이런 생활에 있어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 그는 항상 혼자여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경계심만 늘어나다 보니 누군가를 믿을 수도 없었지만 야마토는 누군가와 함께 지낸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야마토는 한 짐 가득 해온 나무를 보며 목을 이리저리 돌렸다. 우두둑 하는 소리가 나자 야마토는 바로 얼굴을 찡그렸다. 짜증스러운 소리를 내뱉으며 주머니에서 커다란 열매 하나를 꺼내 한 입 가득 베어 물었다.

 

“아, 이제 물린다 이거.”

 

기껏 따와 놓고서도 불평을 늘어놓던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가 볼까 생각했다. 작은 들짐승이라도 잡아올 생각이었다. 아니면 근처에 있는 강에서 물고기라도 잡아올 수 있었다. 야마토는 열매를 몇 번 더 깨물어 먹고는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던져 놓고 바로 집 밖을 나섰다.

 

야마토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재 거처를 잡은 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짧은 기간 내에 수없이 옮겨 다니던 야마토가 1년 가까이 안착하며 지냈던 곳이었는데 운이 나쁘게도 그 지역 전체에 역병이 돌아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다. 병마가 가시고 다시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회복이 되기만 하면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야마토의 마음에 들었던 곳이었다. 이유는 가까이에 있던 강 때문이었다. 어디든 물이 흐르는 것이야 다 똑같고 그 안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마저도 비슷할 텐데 그 강에 집착했던 것은 강가에 앉아있을 때의 풍경이 어릴 적 자신이 머물던 곳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앉아 강 너머를 바라보면 누군가가 머리를 내밀고 자신을 향해 웃어줄 것만 같았다. 당연히 그럴 리 없었지만 야마토는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지곤 했다.

야마토는 옥패대신 품에 지니고 다니는 자신의 보물을 꺼내보았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흠조차 가지 않고 여전히 투명하게 빛나는 유리구슬은 야마토의 손 위에서 데굴거렸다. 그는 절로 나는 미소를 억지로 감추며 다시 구슬을 품 안에 깊숙이 넣었다. 숲 속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토끼라도 없을까 하던 야마토는 발소리를 죽이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꽤 깊은 곳 까지 들어갔을 때 옆쪽에서 사박거리는 소리를 들은 그는 점점 잰걸음으로 소리를 쫒았다.

 

‘제발 오늘 저녁은 고기 좀 먹자.’

 

근 며칠간은 과일로만 배를 채워 대서 그런지 제대로 된 포만감을 느끼지 못 하는 중이었다. 야마토는 꽤 절실한 상태였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는 어느 지점에서 멈추었다. 드디어 멈추었구나 하고 생각하며 야마토는 짧은 단도 하나를 꺼내들었다. 서서히 거리를 좁히며 소리가 났던 쪽으로 다가간 야마토는 나무 뒤로 몸을 감추고 작은 움직임이라도 없는지 유심히 살폈다. 숨 죽여 수풀로 가려진 곳을 노려보던 그는 풀들이 마구 흔들리는 것을 본 순간 앞으로 튀어나갔다. 무언가가 손에 훅 잡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을 잡아 올리는 순간 야마토는 뭔가가 잘못 됐음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그의 손에 붙들린 것은 작은 짐승이라기에는 너무 묵직했고 사람 같은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마토의 손에 들린 단도를 보고 잔뜩 겁에 질려있는 것은 토끼가 아닌 붉은 머리의 소년이었다.

 

“……살려주세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살려 달라 하는 소년의 어깨에는 약초 냄새가 나는 망태가 메어있었다. 야마토는 소년의 새까만 눈동자와 마주치고 몇 초간을 멍하게 있어야 했다. 사람과 마주친 적이 간만인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야마토는 누군가에게 모습을 보이면 안됐기 때문이었다. 야마토는 무작정 제 앞의 소년의 멱살을 쥐었다.

 

“저 아래 마을에 사는 놈이냐?”

“예, 예. 맞습니다.”

“…….”

“음, 저기 이것 좀 놓고 말씀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소년은 꽤나 정중한 말투를 쓰는 사람이었다. 야마토는 이걸 어떡해야 하나 하다가 결국 잡고 있던 멱살을 놓아주었다. 행색을 보니 산으로 약초를 캐러 들어온 아이 같았다. 야마토의 손에서 풀려나자마자 콜록거리던 소년은 야마토를 흘끗 바라보더니 갑자기 안도하듯 숨을 내뱉었다.

 

“하아, 모습을 보니 산적은 아니신 것 같네요. 검을 들고 계셔서…….”

 

팔뚝까지 내려온 망태 끈을 고쳐 멘 소년은 옷을 털며 야마토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야마토는 경계심을 풀 생각이 없었다. 이제 막 자리를 잡은 거처를 또 옮겨야 하나 하며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 중이었는데 약초 냄새를 가득 풍기던 소년이 야마토에게 다시 말을 거는 것이었다.

 

“저기, 마을 분이 아니시죠?”

“…….”

 

야마토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눈치 챘는지 소년은 꽤나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떠한 대답도 해주지 않던 야마토는 결국 거처를 다시 옮기기로 결정 내리고는 몸을 돌렸다. 잡으려던 토끼는 고사하고 또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야마토는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던 야마토는 뒤에서 열심히 자신을 쫒아오는 또 다른 이의 발소리에 볼 안쪽을 깨물었다. 우뚝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니 조금 전 그 소년이 있었다. 긴장한 얼굴을 하고서 야마토를 지켜보던 소년은 뭔가 주저하는 듯 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냥꾼…도 아니시죠?”

“작은 산짐승을 사냥하려던 거라면 맞는데 전문 사냥꾼은 아니야. 그냥 고기가 좀 고픈 방랑자니까 대답 들었으면 쫓아오지 마.”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돌아선 야마토는 뒤쪽에서 아주 작게 ‘다행이다.’ 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다리를 움직였다. 기껏 나무도 다 해놨는데. 궁시렁 거리며 야마토는 재빨리 집으로 돌아왔다. 챙길 짐이랄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옷가지 몇 벌과 몇 닢 되지도 않는 돈, 그리고 물렸다며 던져두었던 열매들도 챙기고 문을 나섰다. 마당으로 발을 내딛었을 때, 야마토는 담장 너머로 인기척이 느껴짐을 알고서 허- 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분명 그 소년이었다. 혹시 자신을 알아보는 녀석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자연스럽게 피어올랐다. 야마토는 굳은 얼굴을 한 채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다. 야마토는 당장이라도 공격태세를 취할 수 있도록 여전히 손에 단도를 쥐고 있었다. 소년이 서 있을 담의 맞은편에 등을 맞댄 채 마른 침을 삼켰다. 그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보미면 야마토도 즉각 대응 해줄 생각이었다. 그러던 찰나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는 코시로라고 합니다. 마을의 약방에서 지내고 있는 사람입니다.”

 

갑자기 자신의 신분을 먼저 밝힌 소년의 말에 당황한 야마토는 조심스럽게 담장 밖으로 나가보았다. 무슨 꿍꿍이냐는 표정을 하고서 바라보니 소년이 어색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꾸벅였다.

 

“죄송합니다. 사냥꾼이 아니라고 하셨는데도 제가 좀 의심이 많아서요.”

“…….”

“다행히 그 오해는 방금 풀렸습니다.”

“내가 사냥꾼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해야 할 만큼 산짐승을 아주 끔찍이 아끼나보지?”

“경계하시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전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연유가 있어 여기저기 떠도시는가본데 전 별 볼 것 없는 약초장이에요. 다만 제 입장에서는 당신이 수상한 사람이기 때문에 확인을 해야만 했습니다.”

 

또박또박 말을 해내는 것이 보통이 아니었다. 야마토는 긴장을 조금 풀어내고 소년을 유심히 관찰했다. 확실히 평범한 아이일 뿐 특별한 점은 없어보였다.

 

“사냥꾼도 아니거니와 이곳도 곧 떠날 거다.”

“예, 알겠습니다.”

“그래도 누구한테 날 봤다는 소리는 안 해줬으면 좋겠어.”

“그것도 잘 알겠습니다.”

 

꽤 순순히 대답해주는 소년의 눈빛이 거짓말을 할 것 같지 않았다. 야마토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년의 까만 눈동자가 야마토의 뒷모습을 쫓았다. 코시로라 자신의 이름을 밝힌 소년은 성큼성큼 멀어져가는 야마토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이내 등을 돌렸다.

 

 





 

 

산은 밤이 빨리 찾아오곤 했다. 해가 조금이라도 내려앉으면 산은 곧 새카만 이불을 덮으려 들었다. 야마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밤을 지새울 곳을 찾아야 했다.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노숙에 진절머리를 치며 여기저기를 대충 둘러보던 그는 괜찮겠다 싶은 곳을 찾아 짐을 내려놓았다. 목이 말라 지니고 있던 열매를 집어 으적으적 씹어댔다. 과즙이라도 삼키니 그나마 살 것 같았다. 나무에 등을 기대고 몸을 쭉 펴니 금방 피곤이 몰려왔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잠은 오지 않았다. 야마토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넋이 빠진 사람마냥 앞을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해가 완전히 산 아래로 떨어져버리자 야마토는 억지로 눈을 감았다. 날이 밝자마자 일찍부터 출발할 생각이었다. 아직 어디로 갈지도 정하지 못 했지만 일단은 아래로, 아래로 어디든 발걸음이 닿는 곳까지 가 볼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걸어야 할 테니 푹 자두어야 했다. 야마토는 얼른 잠이 들기를 바라며 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몇 자나 세었을까 슬슬 잠이 쏟아지려 할 때 야마토는 겨우 오른 수면욕을 누군가가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리도 없이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것들은 사람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짐승도 아니었다. 결국 잠은 다시 싹 달아났고 야마토는 눈을 떠야했다.

 

‘대체 뭘까. 저걸 산적이라고 쳐도 뭐 가진 것도 없어 보이는 놈한테 볼일이 있을 리 없고, 짐승이라 하기에는 낯설다.’

 

야마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기척이 더욱 거세졌고 야마토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숲의 밤은 칠흑 같았고 눈을 떠봤자 감은 것이랑 별반 다를 게 없는 상황에서 야마토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손을 더듬거려 옆에 놓아두었던 짐들을 챙기고 일어서자 무언가가 야마토의 목을 죄었다. 놀라서 자신의 목을 감싼 것을 손으로 꽉 쥐었다. 사람 역시 아닐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자신의 목을 조이고 있는 것은 분명 그 모양이 사람의 팔을 하고 있었다.

 

'그럼 역시 산적인가? 젠장 보이질 않아!'

 

야마토는 되는 대로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그마저도 소용없었다. 무서운 일이었다. 숲은 야마토의 목소리를 가둬버리려는 듯 메아리조차 치지 않았다. 귀신에 홀린 것은 아닐까 하며 몸부림을 치자 몇몇의 기척이 더 늘더니 야마토의 손목과 발목에 뭔가를 칭칭 휘감는 것이었다.

 

“뭐야!”

 

놀라서 목소리를 높여보아도 자신을 옭아매는 자들은 어떠한 반응도 내지 않았다. 그저 야마토를 옥죄어 움직이는 것조차 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었다. 야마토는 이제 막연한 공포감에 물들어야 했다. 손목과 발목이 묶임과 동시에 치밀어 오르는 소름은 어릴 때 느꼈던 그것과 비슷했다. 야마토 자신과 그의 동생을 포박시키던 자들의 잔혹한 미소가 떠올라 버린 탓이었다. 놓으라고 발버둥을 치던 야마토는 자신의 뒤에서 목을 꽉 조르고 있는 자의 턱을 머리로 들이 받아버렸다. 그제야 악- 하는 소리를 내던 것은 여전히 어둠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사람의 모습이었다. 한 사람이 뒤로 넘어가자 나머지 녀석들도 놀란 눈치였다. 야마토는 묶여버린 손과 발 때문에 기어가듯 도망치려 했지만 당연하게도 역부족이었다.

 

“너희들 뭐야!!”

 

정체를 밝히지도 않은 채 무작정 자신을 해하려 하는 이들에게 보여줄 것은 분노뿐이었다. 격렬하게 대항하는 야마토를 꽉 붙잡은 그들은 야마토의 몸을 질질 끌어 당겨 어딘가로 향했다. 끌려가는 내내 놓아달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야마토는 기어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러자 야마토를 끌고 가던 이들 중 하나가 야마토에게 침을 뱉는 시늉을 해댔다. 어이가 없어 더 이상 소리도 나오지 않던 야마토는 그들이 발걸음을 멈춰줄 때까지 얌전히 있어야 했다. 야마토는 땅에 마구 쓸리는 다리에 통증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분명 엉망으로 까져있을 것을 예상하고 혀를 차자 야마토를 끌고 가던 이들의 발걸음이 드디어 멈추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어디까지 끌고 온 것인지 가늠도 못 하겠던 야마토는 이제 또 뭘 할 작정이냐고 항변하려 입을 열었다. 하지만 차마 말까지 꺼낼 수는 없었다. 목소리를 내기도 전에 몸이 던져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 지독히도 닮은 감각은 야마토의 머리를 차갑게 식혀버렸다.

 

‘설마.’

 

야마토는 떨어지고 있던 순간에 낮에 보았던 붉은 머리의 소년을 기억해냈다. 괜히 그냥 돌려보냈다고 생각했다. 분명 그 놈이 마을의 누군가에게 일러바친 것이라고. 그 자리에서 목을 따버려야 했는데. 그리 후회하는 야마토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절벽 아래가 단단한 암벽인지, 흙바닥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계속 추락하던 야마토는 눈가가 시려왔다. 두려움에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곧 머리통이 부서져 죽을 거라 생각하니 온갖 서러움이 북받쳐 이를 악 물었다. 그리고 야마토는 곧 첨벙 소리와 함께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이 자신의 몸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

 

‘물……. 이 아래가 강이었나. 정말 빌어먹게도 똑같네.’

 

손과 발이 묶여 헤엄도 칠 수 없었다. 갑자기 물에 빠져 굳어버린 몸은 잘 움직이지도 않았고 야마토는 속절없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아냐, 아주 똑같지는 않아.’

 

강물은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차가웠다. 야마토는 온 몸의 근육이 얼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이번에는 그 아이가 없다.’

 

악 물었던 이를 더욱 세게 깨문 야마토는 정신을 차리려 고개를 휘저었다. 물에 빠진 것은 행운이다. 물 위로 고개라도 내밀 수 있다면 나름 희망은 있었다. 야마토는 침착하게 손목을 비틀었다. 묶여있는 밧줄 여기저기에 입술을 대보더니 곧 이로 매듭이 지어진 부분을 꽉 물고 풀어내려 애썼다. 숨이 서서히 막혀오자 야마토는 조금 더 서두르기 시작했다. 매듭은 의외로 허술했는지 금방 풀렸고 밧줄을 털어내듯 떨궈낸 야마토는 팔을 휘저어 수면 위로 오르는 데 성공했다. 고개를 내밀자마자 부족한 산소부터 들이마시고 난 뒤 강기슭으로 오른 그는 발목에 묶여있던 밧줄마저 풀어내고 콜록거렸다. 물을 잔뜩 마셔버렸는지 목이 따가웠고 코는 매웠다. 야마토는 먹먹한 귀를 손바닥으로 쳐댔다. 아까는 절대 올 것 같지 않던 잠이 마구 몰려오는 것만 같았다.

 

‘여기서 잠들어버려도 황천길이겠는데.’

 

야마토는 기침이 연거푸 터지는 바람에 한참을 웅크리고 있다가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완전히 젖어버린 옷이 묵직하게 살갗을 눌러대는 것 같았다.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일어서긴 했어도 다리를 움직일 기력이 없었다. 결국 다시 주저 앉아버린 야마토는 분한 듯이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 기어이 감기려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보았지만 이미 몸은 야마토의 의사에 따를 생각이 없어보였다. 정신이 아득히 멀어지고 있었다. 야마토의 몸이 완전히 쓰러졌을 때, 누군가가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야마토는 자신의 몸이 또 어딘가로 이끌린다는 사실도 모른 채 까무룩 기절하고야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인 풍경은 처음 보는 방 안이었다. 약초냄새가 진동하는 방이었는데 상당히 좁은 크기였지만 창문은 커다랗게 나있었다. 살짝 열려진 문 틈으로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캄캄했다. 야마토는 자신이 쓰러지고 나서 바로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하루를 꼬박 자버린 것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다행이 감기는 들지 않은 것 같았지만 골이 울리고 가슴이 갑갑했다.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옆으로 돌리자 낯선 소맷자락이 보인 바람에 야마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야 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살펴보던 야마토는 다 긁혔던 다리를 만져보았다. 따끔거리는 상처 위로 약초의 향이 가득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데려와 치료를 해주었다는 것은 일단 이해했다. 떨어졌던 곳 인근에 마을이 있었나 싶어 야마토는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친절한 집주인에게는 감사했지만 당장 나가야했다. 머리맡에 고이 놓여있는 자신의 짐을 허둥지둥 챙긴 야마토가 방문을 몰래 나서려는 순간 누군가가 방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 깨셨어요?”

 

야마토는 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표정을 확 구겼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노려보며 주먹을 쥐었다. 야마토의 앞에 서 있던 사람은 코시로라고 했던 소년이었다.

 

“네가 왜…….”

“하루를 꼬박 잠들어 계시더니 다행이네요. 멋대로 데리고 와서 죄송합니다. 쓰러져 계신 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

“너지, 네가 누군가에게 꼰지른 거지. 너 누구야. 날 알아?”

 

야마토는 코시로의 멱살을 거칠게 잡아 올렸다. 말을 미처 마치지도 못 한 코시로는 숨이 막히는지 야마토의 손등을 마구 할퀴어댔다.

 

“멱살 잡는 게 버릇이신가 봐요.”

“날 아느냐고 묻잖아!!”

“모릅니다!! 누구한테 당신에 대해 말한 적도 없어요!”

“그럼 날 해하려 한 자들은 뭔데. 네놈이 일러바쳐서 날 쫓은 거 아냐?”

“당신을 해하려 한 자들에 대해서도 모릅니다. 전 그냥 당신을 발견했을 뿐이에요.”

“내가 떨어진 곳은 네가 있던 마을과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근데 날 발견해? 산책이라도 하러 나왔나보지? 아니면 구하려던 약초가 그 멀리에 있던가?”

 

비아냥거림과 분노가 동시에 섞여 나온 야마토의 목소리는 몹시 격양되어 있었다. 코시로는 야마토의 손을 떨어뜨리려 힘을 주었다. 하지만 도저히 힘으로 당해낼 수가 없다고 판단되자 그는 곧 두 손을 들고야 말았다. 숨을 깊게 내쉰 코시로는 야마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전 그 마을 사람이 아니에요. 그건 거짓말이었습니다. 죄송해요. 전 혼자서 여기 살아요.”

“뭐?”

“당신을 처음 봤을 때 거기 있었던 건 제 개인적인 볼 일 때문이었고……. 제 원래 거처는 이 곳입니다. 저도 혼자 지내거든요. 아마도 그 쪽이 그런 것처럼 저도 사정이란 게 있어서.”

“내가 그걸 어떻게……!”

“믿기 싫으시면 안 믿으셔도 됩니다. 다만 알아만 두세요. 저도 사람은 안 만나요. 그러니 누구한테 가서 당신을 봤다고 이를 수도 없고요. 왜냐하면 저도 피차일반이거든요. 다른 이들에게 들키면 안 되는 사람이니까요.”

 

꽤나 단호하게 말하는 코시로의 태도 덕이었는지 야마토는 손에 슬슬 힘을 풀었다. 코시로는 다짜고짜 사람 멱살부터 잡는 것은 좋지 않는 버릇이라고 꿍얼거리며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얼마나 세게 잡았으면 코시로의 피부가 빨갛게 올라있었다. 후- 하고 숨을 한 번 고른 뒤 코시로는 정중하게 야마토에게 인사했다.

 

“낮에는 덜렁 이름만 알려드려서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소개해드릴게요. 저는 이즈미 코시로라고 합니다.”

 

야마토가 조금 전에 한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할 정도로 코시로는 그에게 예의를 갖추어 행동해주고 있었다. 큼큼거리며 목을 가다듬은 야마토는 자신도 이름을 밝혀야 하나를 곰곰이 고민했다. 혼자 산다니까 괜찮을까.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고 더 이상 볼 사이도 아니니 그건 조금 과하려나. 온갖 생각을 다 해댔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대답이 없던 야마토는 그저 멀뚱하게 코시로를 바라보아야 했다. 그러자 코시로는 대충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곧 날카로운 눈빛을 띠고서 야마토에게 질문했다.

 

“이즈미라는 성을 들어본 적은 없으신가 보네요. 별로 반응을 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니.”

“그게 무슨 말이야?”

“6년 전에…….”

 

6년 전이라는 운을 떼자마자 야마토는 기를 세웠다. 그것을 고스란히 느꼈는지 코시로는 긴장한 미소를 띠운 채 계속 말을 이었다.

 

“이 나라에 큰 사건이 하나 일어났었죠. 다섯 가문이 결탁하여 왕족을 살해하고 그것이 들통 나는 바람에 반역죄로 몰살당했던 사건.”

“…….”

“이즈미 가문은 그 다섯 가문들 중 하나입니다. 저는 이즈미 가의 유일한 생존자이며 그 가문의 외아들이었어요.”

 

야마토는 할 말을 잃었다. 얼굴 근육이 어찌 된 것인지 멋대로 움직이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자신이 지금 웃고 있는지, 찡그리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에 몸을 비틀거렸다. 코시로가 얼른 야마토에게 손을 뻗었지만 야마토는 됐다고 하며 그 손길을 뿌리쳤다.

 

“그 말을 왜 나한테 해주는 거지?”

“당신은 그 가문 중 어느 가문이었는지가 궁금해서요.”

“……어떻게 안 거야?”

“알지 못 했어요. 지금도 몰라서 물어보는 걸요. 그냥 제 멋대로 예측 한 겁니다.”

“그런데도 그런 질문을 그렇게 생각 없이 내뱉나? 내가 아니라고 대답했으면 어쩌려고? 미리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잖아.”

“그냥 막연한 확신이 섰습니다. 저랑 비슷한 나이대이고, 누군가에게 잠시 모습을 비추는 것마저도 조심할 정도로 사람을 경계하고, 홀로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것을 보고서 어림짐작 한 거지만. 그 때 당시 반역죄로 처단당한 가문의 자식들은 죽어서 이미 세상에 없거나 혹은 저와 같은 삶을 살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까요.”

 

야마토는 생각지도 못 한 인연이 닿았다고 생각했다. 희미하게 웃는 코시로의 발치만 바라보던 야마토는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힘겹게 마주했다. 새까만 눈동자 위로 자신이 비쳐보였다. 스스로의 얼굴에는 반가움인지 불안함인지 모를 감정들이 잔뜩 묻어 있는 것 같았다. 야마토는 언제부터인가 요동치고 있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 한 채 또 한 번 크게 휘청거렸다. 이번엔 코시로가 잡아주는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힘겹게 지탱한 몸에 서서히 힘을 빼고 앉은 야마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시다 야마토.”

 

다른 이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동안은 자신의 이름을 까먹을 것 같다고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며 웃을 때도 있었다. 이시다 야마토. 그래, 그것이 그의 이름이었다. 코시로는 야마토의 대답을 듣고서야 밝게 웃어보였다.

 

“힘이 드시면 조금 더 머무르다가 가셔도 됩니다. 지금은 너무 어둡기도 하고요. 그리고 어차피 여긴 아무도 안 오거든요.”

“눈에 띨 걱정은 없는 곳이네.”

“네, 그래서 매우 고요한 곳이에요.”

“너무 고요해도 안 좋던데.”

“그 말에는 동감합니다.”

 

코시로는 한 번 더 미소를 지어주고 방을 나섰다.

 

코시로의 말대로 집안은 고요하다 못 해 적막감마저 맴돌았다. 방안은 오로지 야마토의 본인의 숨소리뿐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그는 곧바로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루를 꼬박 자놓고도 눈이 감기는 것이 신기했다. 서서히 닫히는 눈꺼풀 사이로 보인 시야가 흐물거렸다.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던 풍경이 신기해서 눈을 전부 감지는 않고 계속 바라보는데 자신이 누워있던 방 안에 서서히 물이 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기둥과 천장, 창문이나 가구가 짙에 젖어드는 광경을 실눈으로 멍하게 쳐다보던 야마토는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눈을 확하고 떴다. 완전히 잠겨버린 방안처럼 자신의 몸도 물속에 빠져 귀가 먹먹했고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혀 숨이 막히지는 않는 것을 보아 또 짓궂은 꿈이리라 짐작한 야마토는 한숨을 쉬었다. 물속에서 한숨을 쉬자 공기방울이 위로 떠올랐다. 세상이 물속에 잠긴 채 물건들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풍경은 꿈이라 해도 장관이었다. 스스로를 홀리는 아름다움에 취해 있을 때 야마토는 생각했다.

 

‘이게 내 꿈이라면, 내가 멋대로 만들어내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

 

그리고 그 생각을 마치자마자 야마토는 자신의 눈앞으로 다가와 있는 소년을 볼 수 있었다.

 

‘아니, 막 만들어 내면 안 될 지도 모르겠어.’

 

야마토는 예쁘게 웃고 있는 소년의 뺨을 아주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갈빛 머리카락이 물결에 맞추어 흔들려댔다. 지금은 네가 없어도 숨을 쉴 수 있어. 그리 말하자 아이가 장난기 가득한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그런 아이의 작은 몸을 가득 껴안고 야마토는 점점 아래로 가라앉았다. 네가 보고 싶어. 그리움이 가득 묻어있는 야마토의 말에 아이가 빼꼼 고개를 들자 야마토는 아이의 이마에 입맞춤했다. 아이의 미소가 애석할 만큼 빛이 났다. 나는 언제까지 꿈인 채로만 널 만나야 할까. 찾으러 가겠다고 약속했던 것은 야마토 자신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포기하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을 때, 그는 한없이 절망 속으로 빠져들어야 했다.

 

‘이대로라면 꿈에서 깨어날 수 없을지도 몰라.’

 

여전히 소년을 품에 안은 채로 야마토가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그래도 괜찮을 텐데.’

 

아주 독한 열병이라도 앓는 것처럼 야마토는 고통에 겨워 울었다. 타이치. 그가 보고 싶었다. 매일을 그리워해야 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강과 바다를 찾아다니면 언젠가는 볼 수 있을까. 슬픔이 녹아 눈물로 내렸다. 가만히 야마토에게 안겨있던 타이치가 안타까운 얼굴을 하고서 야마토의 입술을 쓰다듬었다. 숨결이 닿았던가. 야마토는 온기를 느낌과 동시에 눈을 떴다.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이 턱 끝으로 모여 똑똑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야마토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버리고 눈을 가렸다. 한 손으로는 제 가슴께를 더듬거리더니 품 안에서 굴러다니는 구슬을 쥐었다. 닦아버린 보람도 없이 눈물이 다시 차올랐다. 야마토가 쏟아내는 눈물같이 한 밤의 꿈은 아득하게 흘러내렸다. 안타까운 이의 모습을 감추려는 것이었던가. 이 밤도 달이 보이지 않는 새까만 밤이었다. 야마토는 꿈속의 타이치가 입술을 떼고서 마지막으로 한 말을 떠올렸다.

 

야마토.

잊혀져가던 자신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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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언제 다시 만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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