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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토막

Bloody Dawn

BGM : 가인_Paradise Lost







그러니까 처음 알아차렸을 때는. 그래, 그 때였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어수룩한 새벽녘이었고 나는 어느 골목길 중간을 가로막고 주저 앉아있었고 내 옆으로는 피가 낭자한 채 싸늘하게 죽어버린 남자의 시체가 누워있었다. 처음 본 사람의 사체에 순간 구토감이 몰려 내 입을 틀어막았을 때, 나는 끈적거리는 느낌에 손을 떼어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다 말라붙어버린 피가 묻어나왔다. 입가에 치덕치덕 묻어있는 혈액을 보고 나는 결국 쏠려 나오는 토를 참지 못 했다. 공포와 당혹감에 취해 흔들리던 내 눈동자가 붉은 색이었던 것을 그 때는 알지 못 했다. 단지 내가 사람을 죽였고 그 사람의 피를 마셨다는 것만을 알아챘다.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 한 채 집으로 들어왔다. 사실 집으로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섭고 그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여유가 생기지 않았던 나는 옷을 입은 채로 욕조에 들어가 차가운 물에 몸을 담갔다. 미친 사람처럼 입 주위와 손을 박박 소리가 나도록 닦아대며 끝내는 결국 울고 말았다.


“근데 그게 말이야. 받아들이고 나니까 그냥 한 순간일 뿐이더라. 바람같이 지나가는 그런 거. 돌이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거.”


왜 울었을까. 바보같이. 사실 언제부터 내가 사람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인지는 지금도 알지 못 한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내 삶이 언제부터 180° 뒤집어졌는지 호기심이 생길 법도 한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독을 품은 송곳니에 물리면 죽거나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금. 나는 과연 누가 내 목을 물어뜯고 이딴 삶을 부여했는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살의가 솟구칠 뿐이었다. 그 살의를 아무 죄도, 상관도 없는 타인에게 풀어내고 있다는 것은 솔직히 잘못된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게 잘못이라고 한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인가. 그것은 인간들이 운운하는 윤리이며 도덕이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그래도 좀 봐줘. 사람을 죽인 것은 방금 말 했던 과거, 그 때 딱 한 번뿐이었거든.”


나는 웃으며 내 앞에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그는 의자에 묶여있었고 입은 테이프로 막혀있었으며 목에서는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얀 목덜미에 내가 할퀴어놓은 자국이 선명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한기가 서려있었다. 나는 그 눈빛과 똑바로 대면했다. 우습다는 듯이 살짝 미소 짓자 분노를 표출하려는 듯 으르렁 대는 것이 재미있었다. 사내의 일그러뜨린 미간 사이로 식은땀이 번졌다. 나는 그를 보며 정말 불필요하게 예쁜 눈동자를 가졌구나 하고 생각했다.


“빼내서 가져버릴까.”


새까맣게 칠해놓은 손톱으로 사내의 눈꺼풀을 살살 그어대자 그의 눈매가 더욱 매서워졌다. 그런 사내의 콧등 위로 입맞춤을 해주었다. 그러자 분노로 가득 찼던 표정에 당혹감이 함께 번졌다. 예쁜 눈동자로 비춘 내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눈이 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음, 그래도 곧 새로 들일 가족인데. 불구면 조금 속상하겠지.”


윗입술을 혀로 한 번 쓸었다. 예고 따윈 없었다. 사내의 막힌 신음소리가 들렸다. 송곳니에 뚫려버린 살갗 아래로 혈관이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심장의 고동은 언제나 뜨거웠고 뻥 뚫려버린 내 안의 어딘가를 채워주는 판막 같은 것이었다. 온 몸에 전율이 이렀다. 사내의 몸부림이 점점 심해지는데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적당히 마셨다고 생각했을 때야 입술을 떼었고 나는 턱으로 흘러 똑똑 떨어지는 그의 피를 아깝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게 일렁이는 그의 시선을 뒤로하고 입에 붙여두었던 테이프를 떼어주었다.


“아마 나흘정도는 많이 아플 거야.”

“……너.”

“반가워. 내 새로운 가족.”

“이 미친 새끼가……!”


목소리가 이미 공포에 젖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구 터뜨리는 감정을 무시하며 나는 뒤돌아서서 작게 웃었다. 그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나는 이미 아주 오래 전에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곧 시작되려나. 하고 작게 중얼거리자 약속이나 한 듯 의자가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여유롭게 사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슬슬 몸의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는지 그가 몸부림을 쳤다. 나도 저렇게 아팠었겠지. 기억도 나질 않지만. 사내의 눈동자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나와 같이 새빨간 루비를 박은 듯 핏빛으로 물들어 갈 테지. 그걸 거부하려는 듯 비명을 내지르는 사내를 보던 나는 곧 눈을 감았다. 그리곤 생각했다. 그래봐야 너도 조금만 지나면 지금 이 순간이 그저 순간일 뿐일 텐데. 바람같이 지나가는 그런 거. 돌이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거.


다시 눈을 천천히 떴다.

어슴푸레한 새벽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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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커플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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