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타이]Aria 04
아침은 언제나 고요하게 찾아온다. 햇빛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검은 하늘에 녹아내리며 번져간다. 그 눈부심을 가장 먼저 느낀 산새들이 귀엽게 지저귀며 잠을 깨웠다. 개운하게 자리에서 일어선다. 밖을 바라본다. 잔잔히 흐르는 물이 아침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저 아름다운 비단물결 속에 그가 있을 것이다. 그도 지금쯤이면 잠에서 깨어났을까. 아니, 혹시 늦잠꾸리기 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모르는 게 많았다.
아리아에 대해서도.
소년 자체도.
야마토는 몸이 거의 다 회복된 것을 느꼈다. 움직이는 것이 힘겨웠던 시기를 지나자 이제는 오히려 가만히 있기가 힘들어지고 있었다. 몸을 풀어줄 겸 숲 속을 산책하기로 마음먹고 예전에 지내던 곳과는 정 반대의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서히 찾아오는가 싶던 여름은 요 며칠 새 성큼 다가와 있었다. 덕분에 숲의 풀과 나뭇잎은 녹음이 더욱 짙어졌고 그 향도 깊어져 있었다. 천천히 걸으며 낮게 열린 열매들도 간간히 따먹던 야마토는 빽빽한 나무길이 끝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앞의 풍경을 본 그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말았다. 하얀 꽃밭이 있었다. 눈앞의 장면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절경이었다. 이 숲속에 이렇게나 아름다운 곳도 있었구나 하며 야마토는 그 자리에 앉아 꽃밭을 구경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맞추어 이리저리 춤추는 꽃들은 그 새하얀 꽃잎을 날리기도 하며 아름다운 향기까지 선사했다. 화려하면서도 평화로운 풍경에 잠시 취해있던 야마토는 문득 강 아래에 있을 그가 생각났다.
‘물속에서만 지내니까 이런 건 본 적 없지 않을까?’
물가에서 멀어져 본 적이 없다던 타이치는 분명 강 근처의 경치만 봐왔을 것이었다. 이런 풍경을 보면 그도 기뻐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미치자 야마토는 어서 타이치에게 이곳을 보여주고 싶었다. 야마토는 지체 없이 하얀 꽃을 한 송이 꺾고서는 강을 향해 뛰었다. 한달음에 도착한 야마토는 숨이 차는 것도 잊고 그저 신난 마음에 타이치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이치가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손을 한 번 흔들어 야마토에게 인사를 하더니 곧 항상 앉던 자리에 가서 앉는 것이었다. 타이치도 약속이라도 한 듯 야마토가 부르기만 하면 물가로 나와 늘 같은 자리에 앉고는 했다. 뛰어가 그 옆에 앉은 야마토는 타이치에게 꺾어온 꽃을 보여주었다.
“음? 꽃이네? 이 주변에서 본 적은 없는 꽃인데. 야마토 산책이라도 다녀왔어?”
“응, 몸이 거의 다 나으니까 가만있기가 좀이 쑤셔서. 아, 그것 보다 타이치 이 꽃 있잖아 숲 안쪽에서 따온 거야. 이 꽃들이 천지인 곳이 있어!”
“아, 혹시 꽃밭이라고 하는 곳이야? 난 제대로 본 적이 없어.”
“역시! 그럼 타이치, 나랑 거기 보러 가자! 너도 엄청 맘에 들 거야! 얼마 멀지도 않고.”
“나도? 거기까지 가자고……?”
야마토의 그 말에 타이치는 곰곰히 고민해보는 듯 했다. 그의 입에서 싫다 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야마토는 초조하게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다 타이치가 정말 얼마 멀지 않은 거냐며 재차 확인하자 야마토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 모습에 타이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좋아!”
야마토는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약간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 타이치를 보며 귀엽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물에서 아예 멀어져보기는 처음이라며 연신 걱정하는 타이치에게서 좋아라고 대답하던 그 패기 넘치는 모습이 온데간데 없어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자신에게 꼭 붙어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 예전에 제 동생의 모습과 겹쳐보였다. 야마토는 자신의 동생에 대한 생각을 잠깐 하다가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가는 건데 슬픈 기억을 떠올리기는 싫었다.
“저어, 야마토. 아직 멀었어?”
“아니. 거의 다 왔어. 저기 보면 나무길이 끝나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확실히 멀리있지 않았다. 그제야 안심한 듯 타이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야마토의 손을 더 꼭 잡았다. 꽃밭에 다다르자 예상했던 대로 타이치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평소에도 반짝이던 갈색 눈동자가 더욱 빛나고 있었다. 그 눈동자 안에는 새하얀 꽃밭이 가득 차 있었다. 진심으로 이 풍경에 반한 듯이 타이치는 잠시 동안 같은 자세로 굳어있었다.
“물속에는 이런 곳이 없어!”
“멋있지?”
“응! 왜 수피아들이 늘 자랑했었는지 이해가 가!”
“수피아?”
생소한 단어에 야마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꽃들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타이치는 그런 야마토를 신경 쓸 틈이 없어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뿌듯해진 야마토는 '수피아'라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물어보기로 하고는 함께 꽃밭을 감상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순간 타이치는 목이 칼칼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 느껴보는 이질감에 눈가를 찌푸린 그는 야마토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야마토, 나 목이 이상해.”
“뭐? 어떻게 이상한데?”
“잘 모르겠어. 그냥 이상해.”
그것이 '갈증'이라는 것을 타이치는 알지 못했다. 처음 느껴보는 목마름에 많이 당황했는지 타이치는 야마토의 팔을 잡아끌었다. 본능적으로 다시 물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있었다. 조금 더 성숙한 아리아였다면 이렇게 짧은 시간동안 물가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없었겠지만 타이치는 아직 어린 아이였다.
“타이치, 돌아갈까?”
“응.”
야마토는 다급하게 대답하는 타이치의 손을 다시 꼭 잡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강까지 거의 절반 정도에 이르렀을 때, 빨리 가자며 재촉하던 타이치의 걸음이 뚝 멈춰버렸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야마토는 놀란 눈을 한 채 뒤를 돌아보았다. 멈춰 서있던 타이치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야마토, 다리가 안 움직여…….”
숙인 타이치의 고개 아래로 맑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갈증이 더욱 심해지고 있었는지 목을 부여잡고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며 야마토는 어찌할 줄 모른 채로 있었다. 아리아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 사실이 야속하기만 했다. 여기서는 무언가를 해줄 방법이 없으니 야마토는 어서 타이치를 강으로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타이치의 앞에 앉아 등을 보였다.
“업혀.”
“……응?”
“빨리. 얼른 가야지.”
우물쭈물하던 타이치는 결국 야마토의 등에 기대어 목을 꼭 끌어안았다. 자신과 비슷한 무게를 예상하고 힘차게 일어선 야마토는 의외로 무게감이 많이 느껴지지 않는 타이치에게 놀라고 말았다. 그 덕에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을 것 같긴 했지만 말이다. “너 진짜 가볍다.”라고 말을 하자 타이치는 그제야 다시 피식하고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안심한 야마토가 몇 걸음 가지 못 했을 때였다.
“어쩌자고 여기까지 나왔어?”
여자아이들의 목소리가 하늘에서부터 들러왔다. 야마토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빽빽하고 높은 나무들, 그리고 그 사이로 다니는 다람쥐와 산새밖에 보이지 않았다. 허나 그들이 말을 했을리는 없었다.
“타이치, 방금 목소리…….”
“응, 괜찮아. 나무 위쪽을 잘 봐봐. 걔들이 있을 거야.”
“걔들이 누군데?”
“수피아들.”
타이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위에서 누군가가 뛰어 내렸다. 그것은 아주 순식간의 일이었다. 여자아이들이 너무도 사뿐하고 자연스럽게 땅을 딛고 내렸기 때문에 야마토는 그것이 놀라운 행동임을 자각하지 못 할 뻔 했다. 뒤늦게 가슴을 졸인 야마토를 빤히 쳐다보는 여자아이들은 그 분위기가 타이치를 많이 닮아있었다. 그것은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주홍빛 머리카락을 지닌 여자아이가 야마토의 등에 얌전히 업혀있던 타이치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아파!!!”
“아프라고 때린 거야! 왜 여기까지 나와 있어? 죠 오빠가 알면 엄청 혼날 걸?”
“안 들키면 되지.”
“퍽이나.”
둘의 말싸움의 중간에 끼어있던 야마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채 서있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옅은 갈색머리의 여자아이는 까르르하고 웃어대고 있었다.
“안 그래도 지금 돌아갈 거야! 소라 넌 왜 나만 보면 맨날 구박만 하냐!”
“받을 짓을 하니까 그렇지! 죠 오빠가 이 인간 남자애랑 놀지 말라고 맨날 말해도 안 듣잖아!”
“야마토는 착해! 좋은 녀석이야!”
“답답해! 미미 너도 뭐라고 말 좀 해봐.”
“타이치 오빠에겐 말을 해봤자 인걸.”
야마토는 서서히 이들 사이에 끼어있는 자신이 불쌍하다고 느껴지는 참이었다. 목이 타고 있다는 사실도 잊었는지 열렬하게 소라의 말에 대들던 타이치가 지쳐버린 채 야마토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의 이마가 평소와는 달리 뜨거웠다.
“아리아는 뭍으로 오래 나와 있으면 아프게 돼.”
미미의 말에 야마토는 몸을 한 번 들썩여 타이치를 제대로 고쳐 업었다.
“애초에 왜 데리고 나왔어? 무슨 꿍꿍이였어, 너?”
“그런 거 없었어!”
꿍꿍이라는 말에 순간 화가 난 야마토가 소라를 향해 소리쳤다. 그 소리에 그녀는 약간 주춤거렸다.
소라와 미미는 더 어릴 때부터 타이치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그가 최근 인간 남자아이와 가깝게 지낸다는 것도, 그 남자아이가 '나쁜 인간'의 축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허나 그녀들은 아리아와 마찬가지로 희귀하고 아름답다는 수피아였다. 아리아가 물의 사랑을 받는 존재였다면 수피아들은 숲의 사랑을 받으며 그 정기를 양식으로 삼아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희귀하기로는 아리아가 우위였지만 수피아들도 그 존재가치가 매우 커다란 자들이었기 때문에 인간들은 숲의 사랑을 받는 자들 역시 탐내왔고 그 이유로 수피아들은 인간을 좋아하지 않았다.
“타이치는 널 보고 좋은 녀석이라고 하지만 난 믿고 싶지 않아.”
“네가 믿던 말던 상관없어. 길만 비켜줘. 타이치를 강으로 돌려 보내줘야 해.”
“…….”
“그리고 난 그저 꽃밭을 보여주려고 한 거야. 그것도 꿍꿍이라고 한다면 나도 더 이상 할 말 없고.”
그의 마지막 말에 소라는 더 이상 대꾸할 말이 없었다. 급히 달려가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소라에게 미미가 말했다.
“저 말이 진짜인 거 언니도 알고 있었으면서.”
“…그래. 꽃향기가 진동을 했으니까.”
강 쪽을 바라보던 여자아이들은 이내 나무 위로 가볍게 뛰어 올라갔다. 흙 위에는 한사람의 자취만이 남아있었다.
강에 다다르자 타이치가 고개를 들었다. 물 냄새를 맡으니 조금 살 것 같았는지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야마토가 조심스럽게 물가에 내려주자 재빠르게 발을 강에 담갔다. 갈증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뜨거워졌던 이마는 그 열이 떨어질 줄 몰랐다. 열 때문에 발그레해진 타이치의 뺨을 문질러주며 야마토는 연신 사과를 해야 했다.
“왜 사과하는데.”
그렇게 말하며 타이치는 오히려 자신이 속상해했다.
“꽃밭이 엄청 예뻤어, 그치?”
“타이치.......”
“내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거야. 네 잘못이 아냐. 다음에는 좀 더 있다가 오자. 조금 더 보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잖아. 너랑 더 구경하고 싶어.”
아까까지만 해도 환했던 타이치의 미소가 어딘지 힘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야마토는 자신을 달래주려 노력하는 그의 모습에 얼굴을 펴기로 했다. 몸이 나아지면 다시 나오라는 말을 작별인사로 하여 타이치가 물속으로 들어서려던 그 때였다. 언제나 잔잔하던 강물이 돌연 회오리치듯 빙글빙글 돌더니 곧 이어 위로 솟구쳐댔다. 그 광경을 보고 놀란 야마토와는 달리 타이치는 한숨을 지었다. 높게 치솟았던 물보라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없어지고 나자 그 자리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물 위를 밟고 서 있는 사람은 야마토보다는 나이가 더 찬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짙은 남청색 머리카락이 물방울들과 함께 나부끼고 있었다. 신비한 느낌의 소년은 잔뜩 골이 난 표정이었다.
“타이치!! 너 어디까지 나갔던 거야!”
“죠 형.”
“놀랐잖아! 요즘 사냥꾼들이 더 많아진 거 몰라?”
“얼마 안 나갔어. 금방 돌아왔고.”
죠라고 불린 소년은 무어라 더 타박을 할 생각이었는지 입을 벌리는가 싶더니 예상과는 다르게 곧 입술을 꾹 닫아버렸다. 그것은 평소와는 다르게 축 쳐져있는 타이치의 목소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타이치는 아직 많이 어린 아리아였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고 멀지 않은 거리였다지만 물이 없는 이상 지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죠는 타이치의 뒤로 서있던 야마토를 바라보았다. 사실 죠는 일찍이 타이치를 야마토와 가까이 두지 않으려 했었다. 타이치가 야마토를 두 번씩이나 살려냈을 때 얼마나 많은 잔소리를 해댔었는지 본인도 세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허나 타이치는 이상하게도 저 인간 소년 하나에게 애착을 가졌다. 죠는 말 없이 그 둘을 지켜보았고 실제로 야마토는 사냥꾼들과 같이 자신들의 존재를 탐내는 자들의 기운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은 두고 보기로 하고 있었는데 오늘 사단이 일어난 것이었다. 타이치가 물에서 멀어진 것을 알아채고 죠가 얼마나 안달복달을 했던가. 금방 돌아오긴 했지만 타이치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죠가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야마토를 바라보고 있자 그 시선이 닿지 않도록 타이치가 야마토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내가 가자고 했어. 야마토는 그냥 꽃밭을 보여주고 싶어 한 거야.”
“타이치, 너 끝까지!”
“진짜야.”
“그걸 어떻게 알아. 그대로 다른 곳으로 끌고 가버렸으면 어쩔 뻔 했는데? 속이 시커멀지 어떨지를 네가 어떻게 아느냐고, 저 녀석은 인간이잖아!”
“하지만 난 여기 있잖아!”
기어코 소리치는 타이치를 뒤에 있던 야마토가 말려냈다.
“끌고 갈 거였으면 애당초 난 여기 없어! 지금 여기 없다고! 날 업고서 여기로 와준 건 야마토였어. 알지도 못 하면서 왜 자꾸 그러는데?”
“알지 못하니까 이러지.”
“…….”
“인간이라고 했잖아 타이치. 그 녀석은 인간이라고…….”
죠는 물 위를 자박거리며 걸어 둘에게 다가왔다. 그는 타이치와 거리가 가까워지자 물속으로 발을 딛고 제 몸을 잠기게 만들었다. 단단히 화가 난 것인지 타이치는 자신의 바로 앞까지 와 있는 죠에게 등을 보이도록 몸을 돌려버렸다. 그의 손은 야마토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죠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타이치가 한 고집하는 녀석인 것은 원래 알고 있었지만 이번과 같은 일이 일어난 상태에서까지 피우는 그의 어리광은 받아주기 힘든 것이었다. 죠는 잔소리는 잘 해도 윽박을 지르며 혼내지는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는 일단 타이치를 잘 달래서 데려가 볼 요량으로 손을 뻗었다. 죠가 타이치의 어깨를 잡으려던 그 순간이었다. 자신보다 먼저 타이치의 어깨를 감싼 작은 손이 보였다. 예상치 못 한 그 손길은 죠 뿐이 아니라 타이치까지 놀라게 만들었다.
“나도 당신들을 몰라. 그래서 타이치를 힘들게 만들었어. 아무 것도 몰라서 이렇게 만들었어. 미안해.”
“…….”
“정말로 꽃밭을 보여주고 싶은 게 다였어. 맹세할게. 그리고 타이치를 어딘가로 데려간다는 건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야.”
“…….”
“나 부터가 어디 갈 데가 없어. 그런 내가 얘를 어디로 데려가겠어.”
타이치의 어깨를 토닥이며 잇는 소년의 말은 담담하였고, 담담하였기에 더 슬픈 말이었다. 아리아들은 인간 아이의 진심 어린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야마토는 다독이던 손을 거두어 타이치의 이마로 가져갔다.
“네 형 말대로 해. 너 지금 아파. 얼른 돌아가.”
“나 괜찮은데…….”
“얼른.”
그렇게 타이치를 죠에게 보내고 야마토는 가벼운 인사만 하고서 곧장 동굴로 뛰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야마토는 그날 밤을 지새워야 했다. 그것은 타이치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그의 몸은 괜찮아졌는지에 대한 걱정이 하나였고. 내일 다시 그와 만날 수 있을까, 또 함께 놀 수 있을까. 다시는 못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둘이었다. 소라와 미미, 그리고 죠. 새로운 만남이 잔뜩 있었던 것 같은 하루였지만 그것은 반갑기 보다는 야마토에게 고민거리만 잔뜩 안겨준 건 같았다. 그의 한숨소리가 동굴 밖까지 흘렀다.
강이 너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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