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Aria

[야마타이]Aria 03

레몬레이드 2014. 9. 8. 01:18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나니 남은 것이 없다. 남은 게 없으니 가진 것도 없다. 가진 것이 없으니 죽을 만치 공허했다. 그런 소년에게 찾아온 새로운 인연은 그 자체로 선물이었다.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을 손바닥에 가두었다. 머리 위의 하늘을 한 번, 몸을 담그고 있던 하늘을 한 번 바라본다. 첨벙거리는 소리와 함께 하늘로 빠져들면 그 아이가 있었다. 어여쁜 미소를 입가에 가득 바르고 다가온다. 손을 뻗어 그 온기에 닿아본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물속에서 마음대로 날개 짓을 할 수 있는 그 존재는 하늘 위를 나는 새처럼 자유로웠다.

 

 





 


 


야마토는 타이치가 가져다 준 약초를 먹고도 이틀을 앓아누웠다. 열도 열이었지만 몸에 생긴 멍과 상처가 많아 그 고통에 끙끙거린 것이었다. 그 상처에 좋은 약초 또한 타이치에게서 받았다. 약초를 가져다주고는 다시 뽀르르 강으로 도망치던 그 모습을 떠올린 야마토는 저도 모르게 푸스스하고 웃었다.

 

「그것도 꼭 먹어! 아, 아니야, 그건 바르는 거다!」

 

그렇게 말하던 아이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었다. 덮을 것이 없던 야마토의 몸에 제 겉옷을 벗어주던 아이의 손길이 서툴지만 부드러웠다. 그 날 이후로 이토록 마음이 편안했던 적이 있을까. 아이가 덮어준 겉옷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그 향을 맡으며 야마토는 이틀간 정말 푹 잠들어 있었다. 깨어나 보니 머리맡에 알록달록한 열매들이 커다란 잎 위에 놓여있었다. 슬금슬금 일어나 타이치의 겉옷을 꽉 끌어안고 열매 하나를 입 안으로 넣었다. 갑자기 시큼한 맛이 확 퍼지자 침샘이 아릴 정도로 침이 입 안에 고였다. 두어 개 정도를 더 집어먹고 나서 야마토는 한결 가벼워진 몸을 일으켰다. 동굴 밖으로 나서려 발을 내딛었을 때였다. 사박사박 작은 발소리가 나자 야마토는 귀를 기울였다. 긴장은 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이의 가벼운 발소리였다. 기척이 가까워지자 야마토는 빼꼼 고개를 내밀어보았다. 으왁- 하고 타이치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어, 일어났네?”

 

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가 이내 반달모양으로 예쁘게 접혔다. 그 손에는 주먹만 한 과일이 들려있었다. 야마토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겹쳐 조금 힘없이 웃어보였다. 그러자 타이치는 씩씩한 목소리로 야마토의 손에 과일을 쥐어주었다.

 

“인간들은 아플 때 많이 먹어야 한댔어! 그러니까 너 이거 다 먹어!”

“아... 그래, 고마워.”

 

고맙다는 말을 들은 타이치는 뿌듯했던 것인지 볼이 발그레 한 채 미소 지었다. 그 얼굴이 참 고와서 야마토는 잠시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전에 타이치가 했던 말이 떠올라 그를 향해 물었다.

 

“너 날 도와줘서 혼났다고 했었잖아? 계속 이렇게 해줘도 되는 거야? 너는 '아리아'잖아.”

“음. 혼나긴 했었는데…….”

 

타이치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곧 괜찮다는 표정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

 

“넌 나쁘지 않으니까 괜찮아.”

 

그 말에 야마토는 약간 남아있던 열이 다시 오르는 느낌이었다. 괜스레 혼자 어색해져서는 들고 있던 과일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새콤달콤한 맛이 혀를 자극시켰다. 타이치가 맛있지? 맛있지? 하며 웃자 야마토는 고개를 숙인 채 한 입 더 베어 문다.

 

 

둘은 물가에서 조용히 이야기하며 놀았다. 야마토는 타이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마구 캐물어보는 것이 실례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아리아에 대한 궁금증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타이치는 귀찮아하는 기색도 없이 그의 말에 착실히 대답해주었다.

 

“우리도 영원히 사는 건 아냐, 너희 인간들처럼 성장하고 언젠가는 죽게 돼. 음, 그리고 우리는 딱히 음식을 먹지 않아도 괜찮아. 배가 고프다는 것도 모르는 걸. 대신에 물에서 멀리 떨어지면 갈증은 느껴. 우린 물이랑 오래 떨어져 있으면 안 된대."‘

 

가만히 듣고 있던 야마토는 가장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을 조심스럽게 입 밖으로 꺼내들었다.

 

“그… 네가 해줬던 거 있잖아……. 입 맞추는 거…….”

 

이러다가는 열이 계속 내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야마토의 머리가 또 뜨거워졌다. 그 때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으나 돌이켜보니 참 부끄러운 그 행위는 야마토를 물속에서도 편하게 숨 쉴 수 있도록 해주었었다.

 

“아 그거, 우리는 그걸 숨을 나눠 준다고 하는데. 너희 인간들도 물속에서 우리들처럼 호흡할 수 있도록 잠시 도와주는 거야!”

 

아리아들에게는 단지 그 뿐인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이었던 야마토에게 입맞춤이란 것은 서로에게 애정을 나눠주는 행위였기에 달아오른 뺨을 억누르기에는 여전히 부끄러웠다. 사실 야마토는 조금 서운하기도 하고 무엇인가 억울하기도 했다. 음, 그렇구나. 하고 자신의 볼을 손등으로 꾹꾹 누르던 야마토에게 타이치는 그렇게 말 했다.

 

“숨을 나눠준 것도 도움을 준 것도 네가 처음이야.”

 

잠시 동안 만이라도 열을 누르도록 도와주는 것은 어렵느냐고, 야마토는 그렇게 묻고 싶었다. 얼굴이 잔뜩 빨개진 그를 본 타이치는 그런 야마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노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괜찮으냐고 묻는 타이치의 걱정 어린 질문에 야마토는 고개만 끄덕였더랬다.

 

"“난 어떻게 해서 도와주게 된 거야?”

 

겨우 진정하고서 물어본 야마토의 질문에 타이치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커다란 눈만 동그랗게 뜬 채 야마토를 바라보던 타이치는 이내 강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대답했다.

 

“그냥.”

 

참 간결한 대답이었다. 왠지 맥이 빠지는 느낌에 야마토는 타이치의 시선을 따라 똑같이 강을 바라보았다. 그 때 타이치가 뒷말을 이었다. 강물처럼 잔잔한 목소리로.

 

“네 울음소리가 너무 슬퍼서. 그래서.”

 

야마토는 제 손등을 덮어오는 타이치의 손길을 느끼고는 몸을 움찔 떨었다.

 

“인간들은 그렇게 구슬프게도 울 수 있구나 해서. 나까지 따라 울 것만 같아서. 그냥 도와주고 싶었어.”

 

그의 대답을 들은 야마토가 천천히 타이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갈빛 눈동자는 언제나 빛났지만 지금은 유독 깊이 가라앉은 채 맑게 일렁이는 것 같았다. 전에도 생각했지만 정말 물 같은 존재였다, 그는.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는 저 강처럼 깊고 넓구나. 이렇게나 맑구나. 이 말을 마음속에만 품은 채 미소 짓는 야마토의 몸을 타이치가 꼭 끌어안아주었다. 편안해지던 그 향이 다시 코 끝을 간질였다.

 

“울지 말았으면 좋겠어.”

 

야마토 역시 타이치의 허리께를 감싸 안았다. 이젠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대답하며 타이치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나른한 오후의 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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