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타이]Aria 02
달이 떴다. 꽉 찬 보름달이 포동포동 살찌운 제 얼굴을 뽐내었다. 야마토는 물결치는 달 위에 떠 있었다. 그의 노란 머리카락이 달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꿈벅거리며 무거운 눈꺼풀을 움직이면서 바로 몇시간 전의 일을 떠올렸다. 자신은 쫒기었고, 나무에 몸을 부딪히고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이번에는 정말로 죽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 때. 그 눈동자를 보았다. 이 달 처럼, 물 위에 놓여 출렁이는 이 달처럼 일렁이던 반짝거림은 전에 생각했듯이 꿈이 아니었다. 그 소년은 그 때처럼 자신을 구해주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야마토만 홀로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이름이 무엇인지, 왜 자신을 구해주었는지 그 무엇도 모르는 채 야마토는 자신을 다독여주던 그 손길을 그리워했다.
야마토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끌며 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야마토를 몰아세웠던 사내들은 이번에야말로 그가 죽었을 거라 생각한 것인지 매복을 한 기척도 없었다. 야마토는 오로지 여인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꾸역꾸역 비탈진 길을 서둘러 걸었다. 허나 그의 간절한 기원도 불구하고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비릿한 냄새는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다고 생각했던 야마토를 절망의 끝자락까지 추락시켰다. 아닐 거야, 아닐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들어선 마당에는 여인의 힘없는 몸뚱이가 나뒹굴고 있었다. 억지로 힘을 실었던 다리가 순식간에 풀렸다. 야마토는 거의 기어가다 싶이 해서 여인의 앞으로 다가갔다. 눈가가 파르르 떨리며 뜨거워졌다. 야마토는 제 앞에 벌어진 장면을 일전에도 보았다.
징글징글했던 피, 그 혈향, 서늘한 검 날. 그 검 날이 그렸던 붉은 얼룩.
야마토는 여인의 팔을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아직 숨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었는지 여인이 힘겹게 눈을 떠 야마토를 바라보았다. 자글자글 한 눈가 주름에 피가 덕지덕지 굳어있었다. 야마토가 도망을 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에서 돌아왔던 여인은 그 곳에 남아있던 사내들에게 어깨부터 복부까지 이르러 크게 베였다. 아직 눈동자라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여인의 고집이었다. 눈앞에 무사히 야마토가 나타나자 여인은 그제야 그 고집을 놓았다. 그녀는 말없이 야마토의 손에 옥패 하나를 쥐어주었다. 이시다 가문을 나타내는 문양이 새겨진 고운 옥패였다. 여인은 희미하게 웃으며 야마토의 뺨을 쓸었다.
“도련님……. 그 옥패 잃어버리지 마시어요……. 잘 지니고 계셔요…….”
야마토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구겨지는 얼굴도 고개 짓에 무참히 떨어지는 눈물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알겠으니 일어나라고, 이제 다른 곳으로 도망가자고. 야마토가 그렇게 말을 해도 여인은 더 이상 기력이 없었다. 제 작은 주인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여인은 정신이 아득히 멀어지는 것을 깨닫고 마지막 말을 쥐어 짜낸다. 마지막 주인께 전한다.
“살아남으세요, 도련님.”
그 말을 마치고 여인의 눈은 영원히 감겼다. 다신 그 눈을 뜨지 못하리라고 야마토는 분명 알고 있으면서도 늙은 그 몸을 계속 흔들어댔다. 부모도, 동생도, 집 안의 모든 이들도 다 잃고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던 마지막 사람마저 자신에게서 떠난다. 그것은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두려움이었기에 야마토는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여인의 온기가 바닥에 흘러내린 피처럼 식어갔다. 이제 야마토의 곁에 남은 따스함은 한 개도 없었다. 그 날 따라 그 커다란 보름달이 그토록 차가워 보인 것은 그 탓이었을 것이다.
저 둥근 달을 닮은 옥패를 꼭 쥐고 야마토는 여인의 시체를 질질 끌어냈다. 여인의 굳어버린 몸뚱이는 피와 흙으로 더러워져버렸다. 연신 미안해, 미안해요. 라고 중얼거리며 야마토는 그 작은 몸으로 여인의 축 쳐진 시신을 끌고 가더니 커다란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는 곳에 다다르자 여기저기에서 제 발만 한 돌들을 주워와 여인의 몸을 덮었다. 맨 손으로 흙을 파내어 그것 역시 시신 위로 덮어주었다. 어느 정도 돌무덤이 단단하게 완성되자 야마토는 달빛을 닮은 하얀 들꽃을 꺾어 그 앞에 두었다. 투둑투둑 하고 떨어지던 것은 그의 눈물이었나, 아니면 그 대신 울어주던 하늘이었나. 지독히도 차가운 늦봄의 비는.
“혼자.”
야마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무리가 진 것도 아니었는데 비가오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이제는 나 혼자야. 이제는.”
야마토가 끌고 오느라 길게 그어졌던 여인의 핏자국이 빗물에 쓸려 지워졌다. 엉망이었던 그 작은 마당도 이 비가 청소해 줄 것이었다. 그 아픈 자욱을 지워내어 아무 것도 남지 않도록.
여인의 무덤을 지어주고 난 뒤 야마토는 잠시 동안 미동도 없이 앉아만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살아남으라던 여인의 마지막 말을 지켜줄 것이라 다짐하며 아무 것도 아는 것 없이 무작정 자리를 뜬다. 옥패를 가슴 속에 소중히 넣어 여미고 야마토는 빗소리에 잠식당한 숲 속을 방황했다. 빗물이 그의 몸을 흠뻑 적신다. 안 그래도 젖어있던 차에 차가운 빗물까지 맞으니 아무리 날이 더워지고 있었더라도 추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야마토는 팔을 교차시켜 제 어깨를 보듬었다. 춥고 외로워서. 땅만 보고 걷던 야마토는 웅덩이 진 물을 보고서도 그 곳을 피해가지 않았다. 풍덩 하고 물결이 치는 소리가 들리고 야마토의 파란 눈이 커졌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이 저리 밝은데 비가 쏟아진다. 새하얀 그 빛을 머금은 눈에 빗물이 고인다.
“추워.”
그렇게 중얼거린 야마토는 갑자기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까 힘겹게 올랐던 비탈길을 거침없이 뛰어 내려갔다. 빗길에 미끄러져 몇 번이나 넘어질뻔 하면서도 용케 길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숲이 품어 안은 아름다운 강이 빗물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야마토는 강으로 뛰어들었다. 물이 제 허리까지 잠기자 야마토는 그 드넓은 강을 이리저리 바라보다가 이내 소리쳤다.
“도와줘!”
이름은 모른다. 어떠한 존재인지 아직 확신할 수도 없었다. 허나 그 소년이 내밀었던 손길은, 그 소년이 불어 넣었던 숨결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소년이 자신을 도와주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야마토는 그거면 충분했다. 온기가 필요했던 어린 소년은 그거면 충분했다.
“부탁이야, 나와 줘!”
메아리마저 빗속으로 파묻혀 추락했다. 야마토는 자신이 물에 빠졌을 때 마다 구하러 와주었던 소년을 기억하고는 무작정 잠수까지 해보았다. 허나 절박한 소년의 몸짓은 강물만 일렁였을 뿐, 그 앞에는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물속에서 한계까지 숨을 참고 기다려보아도 제 앞에 갈빛 눈동자는 그 빛을 드러내지 않았다. 물 밖으로 머리를 들어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야마토는 제 손목을 꽉 깨물었다. 끅끅거리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빗소리와 함께 퍼졌다.
“나는 이제…….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다고…….”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손이 차가웠다. 가린 얼굴도 차가웠다. 흘러내리는 눈물만 아직 뜨겁구나 라고 생각하던 야마토는 몸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느낌에 천천히 뭍으로 향했다. 살아남으라 했다. 그 말만을 머리에 아로 새기며 야마토는 이를 갈았다. 아득바득 살아서, 살아남아서 자신들을 해한 그 자들에게 복수를 할 것이라 다짐했다. 한이 서렸던 파란 눈동자가 한층 더 차가워졌다.
열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 야마토는 도저히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렸다. 날이 밝았고 날씨는 개어있었다.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 한 점 없었다. 그저 푸르른 잎사귀들이 촉촉하게 물기를 품고 있는 것만이 어제 밤의 그 소나기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야마토는 천근만근이 된 몸뚱이를 일으켰다. 용케도 강가 근처에 있던 작은 동굴을 발견하고는 쓰러지듯 잠들었던 것을 기억했다. 많이 다치고 지친 상태였을 뿐더러 그런 몸을 제대로 말리지도 못 한 채 자버린 것이 화근이었는지 야마토의 몸은 열이 펄펄 오르고 있었다. 목이 찢어지는 것 같이 말라서 일단을 물을 마시기로 하고 야마토는 무거운 추를 달아둔 것 같은 다리를 움직였다. 그 때, 자신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약초가 눈에 들어왔다. 야마토는 그것을 의아하다는 눈으로 쳐다본 뒤 일단 주위를 경계하며 굴 밖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적어도 어른의 흔적은. 제 굴 앞에 나 있는 자그마한 발자국을 보고 야마토는 이마를 찡그렸다. 자신의 발 크기와 비슷해 보이는 것을 보면 제 또래의 아이 것이었다. 제 또래의 아이. 야마토는 순간 퍼뜩이는 생각에 그 발자국을 따라 눈을 굴렸다. 발자국은 강에서부터 이곳까지 나 있는 듯 했다.
“설마…….”
설마라고 말하면서도 야마토는 무언가의 기대를 져 버리지 못하고 급하게 발자국이 난 것을 따라 달렸다. 열 때문에 어지러웠던 탓에 발걸음이 둔하긴 했어도 그 발자국이 그다지 길게 나있지는 않아 야마토는 그 끝자락까지 당도할 수 있었다. 역시나 강에서부터 시작된 발자국이었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여기저기를 바라보던 야마토는 목이 말랐던 것도 잊어버리고 물가를 향해 외쳤다.
“너지? 날 구해줬던 녀석 맞지?”
열 때문인지, 묘한 설렘 때문인지. 야마토의 뺨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잠겨버린 목소리로 그렇게 외치던 야마토는 물에 손을 넣어 이리저리 튀겨보았다. 찰방찰방 소리를 내며 물이 너울 거렸다.
“어제도 나오지 않더니. 지금도 숨는 거야? 내 목소리 듣고 있어?”
야마토는 상대방이 제 목소리를 듣는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기쁘게 재잘거렸다. 심연 중에 분명 그 소년이 자신의 말을 듣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던 것이다. 그것을 입증할 만한 증거도 뭣도 없었지만 그는 그렇게 믿었다. 야마토는 진심을 담아 물가에 대고 소리쳤다.
“고마워!”
야마토의 목소리가 강 위로 흘러 스며들었다. 잔잔하던 강물이 순간 일렁였던 것은 자신의 착각이었을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야마토의 눈이 커졌다. 저와 머지않은 강의 중간에 소년이 있었다. 젖은 갈색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소년의 속눈썹에 엉겨 그의 갈빛 눈동자를 한 층 더 깊어 보이도록 하고 있었다. 물 밖에서, 환한 태양 아래서 바라본 소년의 모습은 마치 환상처럼 흔들거렸다. 하지만 저 모습이 환상 따위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야마토는 떨리는 제 손끝을 움켜쥐었다. 그리곤 강으로 들어서려 했다. 허나 소년이 놀란 표정으로 물속으로 쏙 하고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그 자리에 발을 붙이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야마토는 다급하게 외쳤다.
“가지 마!”
그 외침에 다시 물 밖으로 눈만 빼꼼 내보인 소년은 그 커다란 눈으로 야마토를 직시했다. 맑은 눈동자는 순수한 호기심을 담아 야마토를 향해 있었다. 허나 야마토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우물쭈물하기만 했다. 소년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잔뜩 이었지만 어쩐지 혀가 굳어버린 것 만 같았다. 갸웃거리던 소년은 결국 강 속으로 아예 들어가 버렸고 야마토는 한숨을 쉬며 제 손 안에서 조금 짓이겨져버린 약초만 바라보았다. 의기소침 해져서는 동굴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뒤에서 찰방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거 꼭 먹어.”
뒤를 바라보자 어느 새 아이가 서 있었다. 조금 전 까지 물속에 있었던 것이 거짓말인 양, 보송보송한 모습을 하고서는 미소 짓는 아이를 보고 야마토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던가. 소년은 이번에도 야마토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자신의 목을 꽉 끌어안은 야마토의 허리께를 똑같이 안아 주던 아이의 품은 저 태양만큼이나 따뜻했다. 그토록 원하던 온기였다. 펄펄 끓던 열이 내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야마토는 아이를 껴안은 두 팔을 풀지 않은 채, 고개를 소년의 어깨에 파묻었다. 어제와 같았다. 아이에게서는 강물의 청량한 냄새가 났다.
“너는.”
야마토의 파란 눈동자에는 소년의 모습이 가득했다. 계속 그 안에 가둬두고 싶을 만큼 아이는 참 어여뻤다. 개구쟁이 같은 그 미소도, 상냥한 그 목소리도. 계속 품고 싶은 그 체온도.
“너는 뭐야……?”
“…….”
“이름은 있어?”
소년이 활짝 웃었다. 야마토의 이마에 제 이마를 가져다 대며 뜨끈뜨끈한 야마토의 머리를 식혀 주려는 듯 그에게 손 부채질을 해주며 대답한다.
“내 이름은 타이치, 야가미 타이치. 너희 인간들이 부르는 호칭으로는 아마도.”
아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