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타이]Aria 01
티 없이 맑아 아름다우면서도 그 아름다움의 깊이만큼 무서운 강이었다. 짙고 차가운 강물은 소년의 몸을 집어 삼키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했다. 물살이 칼날이 되어 자신의 몸을 베어내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던 소년은 묶여있는 제 손목과 무거운 돌을 매단 채, 그 역시 묶여있는 발목을 한 번 쳐다보았다. 가슴이 쿵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이 새파란 물 속 공간은 아이의 작은 몸을 이제 그만 포기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이는 스르륵 눈을 감는다. 물속에서 그가 흘려보내는 눈물은 그 순간 강이 되어 눈물인지도 알 수 없게 되리라.
‘뭐가 잘못 됐던 걸까.’
제 아버지는 청렴한 사내였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그의 아들이었던 자신이 자신 있게 증명해 보일 수 있었다. 힘없는 귀족, 허울뿐인 신분. 그것이 문제였던 것일까. 더는 누군가를 부릴 수 있는 권력도 없는 주제에 잘 나신 윗분들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다는 것이 제 가문의 죄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되도 않는 살인 누명을 지고, 눈앞에서 자신의 사람들의 목이 베어져 나가는 것을 보아야 했던 것일까. 그래서 제 자신은 물속에 잠겨 숨통이 죄어져야 했던 것이냐고. 죄도 없는 강의 수호자를 향해서 화를 내보아도 시린 강물은 제 몸을 더욱 갑갑하게 가둘 뿐이었다. 감았던 눈을 뜨자 너울거리는 물의 표면이 점점 멀어지는 것이 보였다. 이젠 간신히 머금고 있던 산소도 더 이상 없었다. 입을 벌려보았자 맹맹한 물만 들어올 뿐이었다. 억울하고 참담해서 묶여있던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죄었다.
‘차라리 빨리 숨통이 끊어졌으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아이의 파란 눈에 한이 서려있었다. 강렬하게 치솟던 감정마저도 서서히 죽어가던 그 때였던가. 강물을 닮아있던 아이의 눈동자는 한도 슬픔도 순간 잊고 오직 놀라움으로 젖어들었다. 소년은 매정하게 제 체온을 앗아가던 강물이 갑자기 자신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호흡했다. 아이는 물속에서 보란 듯이 숨을 쉬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일어났다. 제 앞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의 입술로부터 자신의 입술을 통해 흘러들어온 그 따뜻한 입김을 마시자마자 일어난 일이었다.
입을 벌린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소년은 제 파란 눈동자에 그 존재를 담았다. 강의 잔잔함을 닮은 갈빛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검푸르기만 한 물 속에서도 그 반짝거림은 숨길 수 없었다.
“위에 아직 검을 든 사람들이 있어.”
“…….”
“그니까 지금은 나가지 마. 조금 더 있어. 숨을 나눴으니까 편하게 있을 수 있을 거야.”
“…….”
“아파 보여.”
목소리는 너무도 선명하게 들렸다. 자신이 빠졌던 곳이 강이 아니었던가? 애초에 다른 세계에 빠져버린 걸까, 아님 이미 죽어버려 이세계의 모습을 보고 있는 걸까? 소년은 자신의 손목을 단단히 옥죄고 있는 밧줄을 풀어주려 노력하고 있는 존재의 모습을 말도 잃은 채 눈에 담기만 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소년처럼 보였으나 분명 사람은 아니었다. 놀리는 손짓에서부터 눈을 감았다 뜨고 입술을 달싹이는 그 사소한 움직임마저 물결처럼 유하게 흘렀다. 그래, 제 앞의 존재는 맑디맑은 물처럼. 어쩌면 물 그 자체인 마냥. 그렇게 너울거렸다.
소년은 뺨에 닿는 아픔을 느끼며 미간을 찡그렸다. 온 몸이 무거웠다. 대체 볼이 왜 이렇게 화끈거려오는 것인지 알고 싶어 맞물려있는 것만 같은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도련님! 도련님, 정신이 드세요? 세상에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항상 소년의 의복이며 식사를 챙겨주던 중년의 여인은 제 치맛자락으로 연신 그의 창백해진 뺨이며 팔다리를 닦아내고 있었다. 따끔거리는 뺨의 원인을 깨달은 소년은 그녀에게 무어라 말을 해보려 했으나 목구멍이 갈라져 타오르는 느낌 때문에 목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그러다 황급히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애는?”
꿈을 꾼 것처럼 몽롱한 기억 속에는 갈빛의 눈동자만이 선명했다. 그것은 아득해지던 정신 속의 희끄무레한 환상이었던 것일까. 소년은 누워있는 채로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 그 생각에 대해 부인하며 앳됐던 목소리를 머릿속에서 되뇌어본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소년. 그 모습은 되뇌면 되뇔수록 또렷해져갔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잔잔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여인의 울음이 강가를 따라 흐른다. 도련님, 다행입니다 도련님. 눈을 뜨셔서 다행입니다, 살아계셔서 감사합니다. 그 구슬픈 음성에 맞추어 강둑을 찰박대던 물결이 눈에 들어왔다.
“도련님 도망갑시다. 도망쳐서 악착같이 사셔요. 그 악랄한 것들은 지금도 도련님을 찾습니다. 끊어진 밧줄은 그들의 눈에 이미 띄었겠지요. 도련님 도망갑시다. 도련님, 야마토 도련님.”
제 이름이 불리자 그제야 소년은 다시 여인의 주름진 얼굴로 눈길을 돌렸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흐릿하던 아이의 파란 눈동자가 이내 선명하게 빛을 발했다. 심장이 돌덩이가 된 것 마냥 가슴께가 무겁고 답답했지만 소년은 말없이 이를 꽉 깨문 채 상체를 일으켰다. 아팠다. 묶여있던 손목과 발목이. 타들어가는 목이. 무너져 내리는 가슴이. 발갛게 자국이 남아 상처까지 베인 손목과 발목을 손으로 쓸어내자 살짝 맺혀있던 피가 번져나갔다. 붉게 남은 자국이 보이자 소년은 저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해댔다. 그는 저택의 마당이 붉게 물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소름끼치는 철 냄새가 진동하던 것도, 나뒹굴던 시체들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 아비의 목과 어미의 가슴에 꽂혀있던 검의 차가움을 잊지 못한 소년은 기어코 토악질을 하고 만다. 뱉어내는 것이라고는 쉼 없이 들이마셨던 강물과 제 위액뿐이었다. 중년의 여인은 눈물을 멈추지 못 한 채 소년의 등을 두들겨주었다.
“도련님, 기운 차리셔요. 힘을 내셔요. 이 가문의 억울함을 아는 자는 이제 도련님뿐입니다. 이 한을 풀 사람이 도련님뿐입니다. 어서 기운 내셔요.”
소년은 밭은기침을 하며 힘겹게 몸을 추슬렀다. 구역질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지만 억지로, 억지로 참아내며 고통을 삼켰다. 그래, 여인의 말이 옳았다. 이 한 맺힌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가 자신이었다. 아비와 어미는 죽었고 하나뿐이던 동생은 행방이 묘연하다. 자신처럼 손발이 묶여 어딘가에 던져졌을지도 모른다. 이제 자신뿐이었다. 이 버러지 같은 현실에서 살아남은 것이 자신뿐이었다. 화가 났다. 외롭고 슬펐다. 허나 울며 화내진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자신은 이 가문의 하나 뿐인 생존자였다.
몰살당한 가문의 한을 가슴에 새긴 이 소년의 이름은 이시다 야마토였다.
남쪽의 숲은 풍요로웠다. 겨울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먹을 것이 넘쳐났다. 야마토는 고사리 같은 손을 바쁘게 움직여 과실을 따고 있었다. 높은 나무도 척척 오를 정도로 그는 숲 속에서의 생활에 잘 적응해갔다. 자신을 발견했던 여인과 함께 힘겹게 도망쳐 그나마 발을 붙인 곳이 이 숲 이었다. 몇날 며칠을 걷고 또 걸어서 다다른 숲은 다행히도 그들을 내치지 않았다. 자신이 원래 살던 저택은 일부가 불타버린 채 버려졌다가 지금은 다른 귀족의 손으로 넘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인은 종종 가까운 마을로 나가서 이런저런 정보를 들어오고 있었다. 저택의 처분 따위야 이제 알 바 아니었지만 야마토는 씁쓸한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11살의 아이가 짓기에는 너무도 애달픈 표정이었기에 여인은 야마토의 작은 몸을 꼭 껴안아 주었었다. 야마토는 그때의 온기를 떠올리다 다시 과일을 따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발갛게 익은 열매는 먹음직스러운 단내를 풍기고 있었다. 야마토는 생긋 웃으며 어느 정도 두둑해진 제 망태를 톡톡 두드렸다. 능숙하게 나무에서 내려온 그는 자신이 왔던 길을 한 번 쳐다보다가 이내 그 반대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목도 마르거니와 이젠 날이 제법 더워지고 있던 차라 얼굴이라도 씻어낼 요량으로 냇가로 향했다. 야마토는 아직도 물을 보면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허나 그 두려움은 뒤 이어 피어오르는 다른 감정으로 인해 옅어지곤 했다. 그 날 이후로 언제나 이래왔다. 그 갈빛 눈동자가 아직도 야마토의 뇌리에 박혀있었다.
‘꿈이 아니었어, 헛 것을 본 것도 아냐.’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아이가 야마토에게 불어 넣었던 숨결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를 만큼 따뜻해서였을 것이다. 물속에서 호흡을 하며 편하게 몸을 맡기고 있자, 아이는 야마토의 손과 발에 꽁꽁 묶여있던 밧줄을 풀어주었다. 자유로워진 야마토의 두 손을 마주잡았던 아이의 표정은 여느 또래들과 다름없이 참 개구졌었다. 생긋 웃던 아이의 그 표정을 마지막으로 야마토의 기억은 끊겨있었다. 아이의 미소가 물가에 번지는 것만 같았다.
야마토는 열매가 가득 담긴 망태를 옆에 내려두고는 조심스럽게 물에 손을 담궜다. 냇물은 꽤 차가웠다. 얼굴을 닦으려다 말고 문득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제 어미가 가끔씩 들려주던 이야기였다.
‘물속에 사는 존재들이 있단다. 그들은 물속에서도 숨을 쉬고 말을 하며 즐겁게 헤엄쳐 노닌단다. 언제나 그 무엇으로부터도 때 타지 않고 늘 맑은 존재들. 그들을 지칭하는 말도 참 예쁘지, 뭐라 부르는지 아니?’
어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야마토는 미소 지으며 얼굴을 적셨다. 차가운 물로 피부를 적시자 기분은 한결 상쾌해졌다. 몇 번 더 얼굴을 닦아낸 뒤 손을 탈탈 털었다. 상쾌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냇물을 바라 보았다. 잠시 동안 그러고 앉아있던 야마토는 내려놓았던 망태를 다시 어깨에 지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리아.”
제 어미가 해주었던 이야기 속 존재들을 이르는 말은 그거였다. 아리아. 지금보다 더 어릴 적 그 단어를 들었을 때, 참 예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름 그대로 어머니께서 말해주신 그 존재들도 분명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야마토는 아리아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며 자신을 구해주었던 소년을 회상했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노닐며, 미소가 참 예뻤던 아이. 야마토는 확신하고 있었다. 어미의 말이 사실이었노라고. 그 아이는 분명 그 아리아일 것이라고.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야마토는 곧 어머니가 뒤이어 했던 말을 기억해내곤 아쉬운 미소만 지었다. 어머니가 해주었던 말은 이러했다.
‘아리아들은 귀한 존재들이야. 아름답고 귀해서 그들을 취하려는 나쁜 사람들이 많단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싫어하지. 모습을 꽁꽁 숨기고는 절대 사람 앞에 나타나지 않는단다.’
그들은 사람을 싫어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소년이 자신을 구해줬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잠시 생각해본다. 단순한 호기심, 갑작스러운 변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장난이었을까. 허나 그렇다 하기에는 그 소년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었다. 제 밧줄을 풀어주고 나서는 다행이라는 듯 웃어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야마토는 그 소년이 드물게 사람을 좋아하는 아리아가 아니었을까 하는 우스운 기대를 해보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걸으니 어느새 자신과 여인이 은신하고 있는 작은 집 한 채가 보였다. 두 사람이 지내기에는 불편함 없는 아담한 초가였다. 야마토는 망태를 한 번 고쳐 메고 마당으로 들어서려 했다. 그 순간 갑자기 몰려오는 섬뜩한 느낌에 곧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상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이곳에 은신한지는 벌써 두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나날동안 봐 왔던 그대로였다. 분명 그대로인데…….
야마토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미묘한 위화감의 원인이 무엇인지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그리고는 서서히 뒷걸음질 쳤다.
‘흔적이 없어.’
야마토는 지체 없이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너무 깨끗해.’
무엇 때문에 어색함이 느껴지던 것인지 그 이유를 알았다. 야마토는 어깨에 메고 있던 망태자루마저 팽개치고 마구 뛰었다. 열매들이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여러 명의 발자국 소리, 사내들의 다급한 목소리. 아아, 그 위화감. 그래, 마당은 너무도 깨끗했다. 부지런함이 몸에 벤 여인은 언제나 마당청소를 이른 아침에 하곤 했다. 과일을 따러 나왔을 때 자신이 남겼던 그 흔적이 지워졌을 리 없었다. 그렇게 깨끗할 리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은신처를 알아내버렸던 것이다. 야마토는 이를 악 물었다. 사내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야마토는 정신없이 달리다가 그들을 따돌려야겠다는 생각에 길이 나지 않은 곳으로 방향을 꺾었다. 나무들과 온갖 덤불들로 빽빽이 둘러싸인 곳을 달리다가 여기저기 생채기가 났지만 개의치 않았다. 살아야했다. 자신에게 악착같이 살라고 하던 여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여인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오늘도 마을로 나갔을 것이다. 그녀가 저들의 눈에 띠지 않길 바라며 야마토는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던 와중에 야마토는 제 바로 앞이 깎아지른 절벽인 것을 깨달았다. 멈추기에는 가속이 너무 붙은 상태였다. 사내들은 그런 자신을 계속 쫓아오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사내들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발목이 나무뿌리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작은 11살짜리 소년의 몸뚱이는 흙과 나뭇잎 투성이가 된 채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뒤쪽은 검을 든 사내들, 앞쪽은 가파른 절벽이었다. 어디로 가던 죽음이란 것일까. 신이 참 모질다고 생각했다. 정신없이 미끄러져 내리던 야마토의 몸이 절벽의 바로 앞에 있던 나무기둥에 부딪혔다. 엄청난 충격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가까스로 굴러 떨어지는 것은 멈췄지만 눈앞이 아득해져갔다. 사내들의 기고만장한 웃음소리가 꿈속에서 듣는 것 마냥 귓가에서 웅웅거렸다. 야마토는 감기는 눈을 어떻게든 치켜뜨고는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질질 끌었다.
“너희에게 죽을 바에야.”
사내들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는다. 너무 흐릿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당황했을 것이다.
“그럴 바에야. 떨어져 죽는 게 낫지.”
야마토는 제 몸을 던졌다. 힘없이 추락하는 작은 몸은 그제야 정신을 놓았다.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거품이 일었다. 사내들은 말없이 소년이 떨어진 아래쪽을 바라보다가 혀를 한 번 차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야마토가 떨어져 버린 곳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소년의 몸을 받아낸 강의 물결은 잠시 거칠었다가 금새 다시 잔잔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강의 위로 하얀 구름만이 평화롭게 떠다녔다.
아팠다. 몸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눈가가 뜨거워졌다가 금세 다시 식어버리는 것을 느꼈다. 아, 이 느낌. 알고 있다. 참 싫은 감각이었다. 야마토는 서서히 눈을 떴다. 세상이 온통 새파랗다. 무서울 정도로 시리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야마토는 느릿하게 눈을 깜박여 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붕 떠있는 것 같은 감각만이 남아있었다.
‘왜…….’
머릿속에 남는 단어는 이것뿐이었다. 왜. 왜 자꾸 이렇게 되는 걸까. 왜 결국 이렇게 되는 걸까. 야마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앞쪽으로 두 손을 뻗었다.
‘누가 좀…….’
주먹을 쥐고 있던 손을 힘없이 풀어보았다. 그 손끝에서 시작하여 결국은 온몸에 이르러, 야마토는 희미하게 떨기 시작했다. 모질다. 모질고 또 모질다. 야마토는 기어코 눈물을 쏟았다. 비록 보이지 않는 눈물이었을지라도, 강은 제 몸으로 흘러들어오는 그 격한 슬픔의 감정을 읽어낸 것인지 잔잔하던 물결을 휘몰아 치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야마토는 한 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누가 좀 도와줘.’
뻗었던 손을 다시 자신 쪽으로 끌어 제 어깨를 움켜쥐었다. 스스로를 감싸 안은 채 야마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차가워진 자신의 손으로는 온기를 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이제 됐다. 정말로 끝나버렸다. 여인은 도망쳤으면 좋으련만. 야마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점점 더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래, 그 때였다. 그 목소리가 들린 것은.
“물에 빠지는 걸 좋아하는 거야? 숨도 쉬질 못 하면서.”
야마토는 저도 모르게 눈을 번쩍 떴다. 갈빛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있었다. 그 때와 같은 고요한 빛이었다. 그와 같은 색의 진한 갈색 머리카락이 물결과 같은 방향으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야마토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지자 소년은 예의 그 미소를 지으며 야마토의 뺨을 두 손으로 감쌌다. 따스했다. 작은 두 손의 체온도. 입술로 느껴지는 그 숨결도.
“인간을 도와줬다고 해서 엄청 혼났었는데, 그 때의 그 인간을 한 번 더 구해줬다는 것을 들키면 이번엔 물풀로 따귀를 맞을지도 모르겠다.”
“…….”
“그래도 도와줄래. 널 구해줄게.”
“아…….”
“이번에도 넌 상처투성이구나.”
그렇게 말하는 소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야마토의 볼에 난 생채기에서 피가 나와 번지고 있었다. 붉은 액체는 연기가 춤을 추는 것 같은 형상을 띄며 사라져간다. 그 자리를, 그 상처가 자리한 곳을 소년의 입술이 덮었다. 야마토는 자신의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잘 말린 요를 덮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잠이 쏟아질 것 같은 편안함 때문이었을까. 야마토는 소년의 어깨에 제 머리를 기대고는 그 몸을 꽉 끌어안았다. 어딘지 절실해 보이는 야마토의 행동을 말없이 받아 준 소년은 조심스럽게 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 손길이 더 없이 부드러워서 야마토는 안심하며 눈을 감았다. 소년에게서 나는 물 냄새를 맡으며 그렇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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