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타이]너무 오래된 연인
이제 와서 설렘이랄 건 없었다. 7년. 7년이면 그럴 만도 하지. 이시다 야마토는 그렇게 생각했다. 제 앞의 무미건조한 연인을 두고서. 맥주는 시켜뒀다 뭘 하는지 연신 핸드폰만 만지고 있던 타이치는 야마토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묵묵히 술만 마시던 야마토가 자켓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들자 보란 듯이 뺏어들었다. 기가 막히게 알았다. 그가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는 타이밍을. 타이치는 볼멘 목소리로 담배를 다시 뺏어가려는 야마토의 손을 저지하고 그 입에 대신 감자튀김을 물려주었다. 먹음직스럽던 감자튀김은 이미 다 눅눅해져 있었고 덕분에 야마토의 표정은 더욱 구겨졌다.
“아, 얼른 내놔.”
“좀 끊어. 몇 번을 말해야 되냐, 이 골초새끼가.”
“됐으니까 내놔라 진짜.”
“압수.”
“야!!”
대체 언제부터 피우는 양이 이렇게 늘어버린 거야. 빼앗은 담배를 자신의 주머니에 구겨 넣은 타이치는 있는 대로 짜증을 냈다. 담배 냄새 싫다고, 숨 막힌다고. 암만 그렇게 말을 해도 들어주질 않는 제 연인을 야속하다는 듯 째려보니 야마토도 포기한 것처럼 감자튀김만 입에 우겨넣었다. 그런 그들 위로 또 한 번 침묵이 가라앉았다. 타이치는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었고 야마토는 허전한 입을 달래려 맥주를 들이켰다.
야마토의 집 근처에 자리 잡은 작지만 세련된 펍은 늘 마지막 손님으로 두 사람이 남아있었다. 주인도 이제 둘의 모습이 익숙했다. 안주는 올 때마다 다른 것을 시켰고 시키는 것은 늘 타이치 쪽이었다. 주문을 하고나서야 야마토가 가게로 들어서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늘 카운터에서 가장 먼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리고 늘 자잘한 말다툼을 했다. 정작 본인들은 그게 말다툼인 줄 모르는 것 같았지만. 아니, 어쩌면 정말로 일상적인 대화일 뿐인 것을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보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잠시 큰 소리가 오고간다 싶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금새 또 조용해진다. 딱히 오가는 말이 없어도 둘은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편안함과 익숙함. 둘 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들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 설렘이란 것은...
“이제 와서 바란들.”
그런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금발의 화려한 용모를 지닌 사내만 덩그러니 앉아있자 펍의 주인은 흔치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홀로 앉아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안주도 시키지 않은 채 기네스를 4병째 들이켜고 있었다. 야마토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문자 한 통 와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서는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테이블에 던지듯 놓더니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한 모금 길게 빨아들인 연기를 내뱉는 동시에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빠르게 번호를 치자 떠오르는 이름은 야가미 타이치였다. 신호음은 길게 가지 않았다. 통화가 걸리기도 전에 끊겨버렸기 때문이었다. 입에 문 담배가 점점 짧아져갔다.
“한 병 더요.”
그 사이 네 번째 병을 비우고 또 하나를 시키자 주인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야마토를 바라보았다. 허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병마개를 따고는 주저 없이 입으로 가져갔다.
‘금요일에 영화나 보자.’
‘약속 있어.’
‘누구랑?’
‘뭐하게?’
영화를 보자고 제안한 야마토는 타이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헛웃음을 지어야했다. 뭐하게라니. 하긴 솔직히 누구와의 약속인지 궁금하진 않았다. 그저 습관처럼 나온 질문이었다. 하지만 들려온 답변에 너무도 기가차서 야마토는 그 자리에서 화를 내버리고 말았다.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7년차 연인들의 대화는 이렇듯 단조롭고 성의 없고 재미도 없다는 것을.
‘넌 말을 그 따위로 밖에 못 하냐?’
‘새삼스럽냐?’
‘와, 누구랑 뭐하는 지 물어보는 게 그렇게 잘못이야? 어차피 내가 모르는 네 친구가 누가 있는데?’
‘아, 하긴. 뭐 할 건덕지도 없었지.’
‘뭐?’
‘네오랑 놀아. 됐어?’
왜 하필 놀아도 그 새끼랑 노느냐고. 그렇게는 물어보지 못했다. 이제 와서 연인의 친구관계에 이것저것 끼어들기도 뭐했고 괜히 신경 쓰는 것도 서로에게 피곤한 일이어서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서도 가장 큰 이유가 되는 것은 7년이라는 시간이었다. 서로를 지탱하는 믿음이 깔려온 시간이 7년. 하지만 그래도 야마토는 못내 서운했다.
“여기요.”
“손님, 또 시키시게요?”
그냥. 조금 서운했다.
진탕 퍼마시고 곤죽이 되어서는 자신에게 들러붙는 야마토를 침대에 눕혔다. 펍의 주인에게 미안하단 소리를 하며 늘 앉던 테이블을 바라보니 기네스만 8병이 쌓여있었다. 미쳤어, 진짜 미친 새끼 알콜에 빠져 죽어봐야 다신 안 이러지. 듣지도 못 할 욕이었지만 타이치는 일부러 크게 소리쳤다. 거의 기절해버린 성인의 몸뚱이를 가누어주기는 엄청나게 진이 빠지는 일이었다. 낑낑거리며 어떻게든 야마토의 집 현관까지 온 타이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침대까지 가지 말고 그냥 거실 바닥에 내동댕이 쳐버릴까 고민하다 입 돌아가면 큰일이지 하며 기어코 침실까지 야마토를 끌고 왔다. 그를 내려놓고 나서 보니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제 몸뚱이에 타이치는 또 한 번 욕지거리를 날렸다. 그런 자신의 고생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마토는 그냥 골아 떨어져버렸다. 그 모습을 본 타이치는 혀를 찼다.
“미친놈이 떡이 돼서 누워 있어도 잘 생겼네. 아, 힘들어. 진짜 또라이 새끼. 애인 하나 잘못 만나서 이게 뭔.”
타이치는 타령하듯 불만을 토로하다 욕실로 들어갔다. 땀 때문에 몸에 달라붙어 찝찝한 옷을 단숨에 벗어 던지고 찬 물로 샤워를 했다. 초가을에 차가운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자 등줄기까지 오싹했지만 시원한 느낌이 좋았다. 이대로만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곧 푸스스 웃어버렸다. 샤워를 마친 뒤 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은 뒤 속옷 위로 커다란 티 하나만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바로 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들어가 봐야 술 냄새만 진동할 것이고, 거기에 자신이 없었으니 담배 냄새가 베는 것을 말릴 사람도 없었을 것이었다. 타이치는 소파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하, 피곤해.”
그는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 쉬듯 말하곤 낮에 있던 일을 회상했다. 같이 점심을 먹으며 했던 짧은 대화였다. 평소에는 남들이 왜 그렇게 싸워 대냐 물어도 언제 싸웠느냐고 대답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 때는 정말 진심이었다. 자신들에게는 그저 일상적인 대화 중 하나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 점심때의 대화는 말다툼이 맞았다. 스스로도 인정할 수 있었다.
타이치는 그 자리에서도 연신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네오와 문자를 주고받는 중이었는데 금요일에 술이나 한 잔 하자는 것을 열심히 회피하는 중이었다. 그래, 사실 네오와의 약속은 애저녁에 만들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도 왜였을까. 영화를 보러가자는 야마토의 말에 타이치는 있지도 않은 약속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 새끼가 중요해, 내가 중요해? 처럼 예전과 같은 유치한 말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최소한 자신과 보낼 일정보다 먼저 잡힌 약속에 대해 조금은, 아주 조금은 섭섭해 해줄 줄 알았다. 이런 뻔한 일에 야마토가 질투라도 느껴줄까. 그렇게 기대한 자신이 바보 같았음에도 타이치는 약간의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그런 타이치를 보기 좋게 조롱하듯 야마토에게서 나온 질문은 누구랑? 이라는 습관과도 같은 말이었다. 전혀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예의상 묻는 그런 말투로 묻자 타이치도 괜히 화가 났던 것 같다. 덕분에 날카롭게 나간 대답이 뭐하게? 라는 냉소적인 말이었다. 관심을 끄라는 듯, 아니 언제 내게 관심이나 있었나. 그런 마음이 모조리 첨가된 매서운 말.
“나도 쪼잔한 놈이지만… 저 새끼 암만 생각해도 열 받네, 눈치는 좆도 없는 게.”
애써 찬물로 식혀놓은 머리에 다시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타이치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7년이라도, 아무리 긴 시간 서로를 믿고 사랑하며 지내왔다 해도 최소한의 애정은 확인하게 해주기를 바랐다. 야마토는 타이치에게, 타이치는 야마토에게. 익숙함이란 게 참 대단한 것이었다. 지독하게도. 이마에 손을 얹은 채 무념무상으로 앉아있던 타이치는 그 대로 몸을 옆으로 기울이며 쓰러졌다. 소파에 풀썩 소리가 나게 누워버리고는 이대로 잠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눈을 감고 한참을 있는데 위에서 자신을 눌러오는 무게감에 다시 눈꺼풀을 들 수밖에 없었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뻔 했다. 다 뻗어져 잠든 줄 알았더니 야마토가 자신의 몸 위로 누워있었다.
“비켜, 무거워. 들어가서 자라.”
“…….”
“들어가서 자. 제발 네 몸뚱이 좀 치워라. 숨 막히니까.”
타이치가 짜증을 내며 자신을 밀어내던 말던 야마토는 비킬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타이치의 몸을 제 팔 다리로 한껏 옭아맸다. 그러자 기어코 타이치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가 저리 비키라며 야마토의 어깨를 마구 밀쳐내자 야마토가 꾹 다물고 있던 입을 뗐다.
“야, 사이바랑 놀지 마. 나 그 새끼 맘에 안 들어.”
술에 만땅 취해서 한다는 소리가 이런 애 같은 소리인가 싶던 타이치는 곧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의 말을 곱씹었다. 이 애 같은 소리가 자신이 원하던 말이었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니, 술에 취하고서야 섭섭함을 드러내는 건 무슨 심보야.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속으로는 얼었던 감정이 조금 녹았음에도 정작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정 반대의 말이었다.
“내 친군데 네가 맘에 안 들어서 어쩔 거야. 아, 저리 좀 꺼져 무거우니까.”
본인이 내뱉어 놓고도 아차 싶었다. 타이치는 제 요망한 혀를 뜯어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며 그 찰나를 열심히 후회했지만 야마토는 의외로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놀지 말라고.”
“꺼지라고. 너 술 냄새 나. 담배 냄새도 나. 존나 싫거든 지금?”
“이젠 내가 싫어?”
계속 삐딱한 말만 나가는 자신을 속으로 나무라던 타이치는 야마토가 마지막 물음에서 울먹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미쳤나봐, 싫으냐니 싫으면 여기 이러고 있겠냐. 타이치는 야마토의 등을 토닥였다. 그 손길에 조금 안심했는지 야마토는 타이치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서는 “대답.” 이라고 말했다.
“안 싫어.”
“맨날 나랑 있어도 재미없다는 표정만 지으면서. 이젠 설렘도 없지, 너는.”
“그건 그렇지. 야,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냐? 7년이면 그냥 가족이다, 가족.”
“그래, 알아. 그래도 서운해. 그니까 딴 새끼랑 둘이서 놀지 마.”
“애초에 약속 안했어. 멍청아.”
타이치의 대답에 야마토가 고개를 획 들었다. 그러자 타이치가 급히 그의 눈길을 피했다. 볼이 붉어져있었다.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부끄러운지 타이치는 야마토의 머리를 눌러 다시 제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게 만들었다. 그런 타이치의 반응이 맘에 든다는 듯 야마토는 제 연인의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혀끝을 살에 살짝 대자 타이치의 손이 야마토의 머리카락으로 옮겨졌다.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타이치의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이 빗겨지는 느낌이 좋았다. 샤워했구나. 낮은 목소리가 귓가로 들리자 타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치. 섹스하자.”
“와, 그 말은 좀 설레는데.”
둘은 눈을 마주쳤다. 빛도 하나 없는 새벽에 서로의 눈동자는 왜 그리 잘 보이는지. 둘은 말없이 입맞춤을 시작했다. 처음은 수줍은 듯 천천히, 그리곤 곧 잡아먹을 듯 격렬하게 키스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속옷 입지 말걸. 타이치의 말에 야마토가 피식하고 웃었다. 그럼 벗기는 맛이 없잖아.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